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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부산 기장군 연화리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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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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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촌 할매’들의 쉼터였던 작은섬엔 단단한 침묵만이…

기장 8경중 제 2경인 연화리 죽도. 기장의 유일한 섬이다.
천지할매, 청해할매, 연화할매, 손큰할매, 조씨할매, 문씨할매, 수보할매, 박씨할매. 그 바닷가 마을은 할매들의 마을이다. 자세히 기웃거려보면, 수줍고도 겸손하게 물러서있는 만성 아줌마와 등대 이모와 같은 어린 여인들도 보인다. 그녀들은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한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건져 올린 소금 맛 나는 것들을 늘어놓고 오후 내내 손님을 맞이한다. 그 바닷가로부터 겨우 100여m 떨어진 바다에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할매들이 어린 여인이었을 때 그녀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는 섬은 이제 꼭 오므려 쥔 주먹처럼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 마을은 연화리(蓮花里), 그 섬은 죽도(竹島)다.

연꽃무늬 비단폭 같은 산봉우리 연화리
이른아침 물질 나가 건져 올린 해산물
해안 길게 이어진 천막가게 손님맞이
빨간 고무대야 성게·전복·낙지 가득
바닷가 100m 떨어진 거북 형상 ‘죽도’
대나무 많은 섬 선비 찾아 詩 읊고 가무
현재 철조망·담벼락 싸인 신앙촌 별장


◆연화리 신암마을 해녀촌

연죽교에서 본 연화리 해녀촌의 천막가겟집. 가게 안에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구조다.


마을 뒷산이 연화봉(蓮花峯)이라 마을 이름이 연화리다. 연꽃무늬의 비단폭 같은 산봉우리라 한다. 연화리 신암마을은 오래전부터 새바오, 샛방바위, 새뜸바위 등과 같은 이름이 전해져와 이를 한문으로 신암(新岩)이라 했다. 연화리는 조선 후기까지 정식 동리명이 없었고 기장의 아홉 포구 중 가장 큰 포구였던 무지포(無知浦, 無只浦)에 속한 촌락이었다. 연화리라는 이름은 1914년에 생겼다. 행정구역 통폐합 때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마을은 대나무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지금 연화리는 초입에서부터 횟집들이 빼곡하다. 사람들은 이곳을 해녀촌이라 부른다.

부산은 제주에 이어 해녀들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다. 자연적 요건과 대도시의 소비성까지 갖췄다. 부산은 1960~70년대에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호남 지역과 제주 지역 사람들이 부산으로 집단 이주해왔다고 한다. 특히 제주 사람들의 이주 규모가 컸고 그들은 부산의 해안 지역에 자리 잡게 된다. 연화리도 그중 한 곳으로 이곳 해녀들 역시 제주출신이거나 그들의 2세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서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세기가 지나 할매가 되었지만 신암 어촌계 해녀들은 바다가 허락하는 한 매일 새벽녘 물질에 나선다.

해안을 따라 수십 개의 천막가게가 늘어서 있다. 조막 만한 가겟집들마다 자부심이 묻어나는 할매, 아줌마들의 소박한 간판이 걸려 있다. 입구를 장식하는 것은 빨간 고무대야다. 성게, 멍게, 개불, 참소라, 갯고둥, 전복, 낙지 등이 가득 들었다. 연화리는 기장미역, 기장붕장어로도 이름 나 있지만 해녀들이 오전에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진하게 끓여낸 전복죽이 가장 유명하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죽 끓이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푸르스름한 빛깔의 전복죽은 부산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풍미를 자랑한다. 가겟집 내부는 대부분 장판 바닥이다. 바람이 살랑 부는 비닐 창문 너머로 먼 등대를 보며 잠시 기다리면 소반 가득 바다가 찬다. 과한 호객은 없었다. 소음도 풍악도 없었고, 거리는 차라리 조용하다 할만 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활기에 어리둥절해진다. 한시도 쉬지 않는 바닷가 여인들의 절제된 몸짓들이 대기를 흔든다. 그녀들은 몸 전체로 산다.

◆기장의 유일한 섬, 죽도

죽도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지금은 대나무보다 동백나무가 우세해 동백섬이라고도 불린다.
죽도에서 본 연화리. 오른쪽 다리가 육지와 죽도를 잇는 연죽교다.

연화리 앞바다에는 마치 거북이 물에 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의 작은 섬 하나가 있다. 기장군의 유일한 섬, 죽도다. 대나무가 무성했다는 섬은 기장 팔경 중 2경으로 선비들이 즐겨 찾아 시를 읊고 가무를 즐겼던 곳이라고 전한다. 예로부터 ‘밤비가 내리고 바람에 댓잎이 살랑거림’을 일러 ‘죽도야우(竹島夜雨)의 승경’이라 했다. 반세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섬을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해녀들의 쉼터였고 마을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였으며 학생들이 소풍을 오거나 그림을 그리러 찾아들던 곳이었다. 그때 섬 안에는 조그마한 암자와 샘이 있었다고 한다. 구기장군향토지(1992)에 ‘죽도에는 옥녀당(玉女堂)이 있어 정월 초하루, 시월 초하루에는 마을에서 당제를 올렸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죽도는 법인 종교 단체 소유로 ‘신앙촌 별장’이라 불린다. 외곽은 철조망과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숲은 섬의 중앙부에 조금 남아 있다. 동백나무가 우세해 어떤 이들은 동백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육지와 섬을 잇는 연죽교는 죽도의 가장자리에 콘크리트 광장을 만들어 연결해 두었다. 다리를 건너면 북쪽으로 대변항과 뒤의 봉대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변항은 지금 봄 멸치 시즌이겠다.

갯바위로 내려선다. 섬 주변의 갯바위 지대는 넓고 비교적 평탄하다. 2015년 경 부산시는 연화리 앞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어 해양레포츠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녀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우리의 일자리를 건들지 말라.’ 인공 섬 건설은 무산되었고 연화리 앞바다는 여전히 그녀들의 밭이다. 섬의 동남쪽으로 나아가자 대변항의 외항방파제에 서 있는 붉은 월드컵기념등대와 해상의 뜬 방파제에 서 있는 하얀색의 마징가Z등대와 노란색의 태권V등대가 한눈에 보인다. 마치 한강 밤섬에 표류한 김씨처럼 ‘안녕’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홀로 앉아 있던 낚시꾼이 휙 뒤돌아본다.

섬은 흑단나무처럼 단단한 침묵을 두르고 있다. 동백이 많다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밀림으로 보인다. 나무들은 매우 건강하고 숲은 진창처럼 농도가 짙은 청록색이다. 옥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숲이다. 샘은 여전히 저 속에 있을 게다. 바닷물이 아닌 순수한 자연생수가 솟는다는 샘. 어쩌면 새벽의 토끼가 샘물을 마실지도 모른다. 몇 채의 집이 보이지만 사람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가 어찌나 엄청난 고요 속에 묻혀 꼼짝 않고 있는지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다. 어쩌면 철망에 묶여, 숲과 옥녀와 토끼의 샘은 신비롭게 보전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섬을, 아니 섬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일은 30분이면 족하다. 해녀들의 천막가게들이 등 돌리고 선 곳에 다다르자 섬은 마치 커다란 귀처럼 쫑긋거렸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대감분기점에서 부산외곽순환도로 기장방향으로 간다. 기장IC로 나가 해운대방향으로 남하하다 보면 대변항 아래에 연화리가 위치한다. 해녀촌 전복죽은 1인 1만원 선, 모듬 해물은 3만~5만원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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