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원전 해체산업, 황금알 낳는 거위 맞나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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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6   |  발행일 2019-05-06 제27면   |  수정 2019-05-06
[월요칼럼] 원전 해체산업, 황금알 낳는 거위 맞나

“현대기아차를 없애고 대신 번듯한 폐차장을 차려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와 수출을 대체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

“잘나가는 보건·의료산업은 없애고 장례식장 운영에만 매달리겠다는 것과 같은 꼴이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원전 해체산업 육성 전략을 두고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 발표를 보면 2022년까지 원전 해체분야 전문 인력 1천300명을 양성하고, 2035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해 원전 해체시장 세계 5위까지 올라선다는 목표다. 겉으로 보기에는 새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하지만 원전 해체 기술력도 경험도 부족한 한국이 세계시장을 잡겠다는 포부가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행여 탈(脫)원전으로 화난 민심을 달래려고 원전 해체 시장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포장해 불쑥 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453기, 영구 정지된 원전은 170기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이츠화이트 분석을 근거로 원전 해체시장이 549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도 원전 30기를 기준으로 22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언뜻 수치만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전 해체산업은 오염 제거와 건물해체, 폐기물 처리가 대부분이어서 노무비와 폐기물 처분비용 등을 제외하면 시장 규모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특히 신규 원전 건설·운영에 비하면 규모가 10분의 1 수준이다. 보통 원전 1기 건설에 5조~10조원이 들고 한 번 지으면 최장 60년을 운영할 수 있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하는 원전 4기의 경우 건설비만 20조원, 설비 수명 60년 동안의 운영 관리비 54조원, 부품과 핵연료 납품비 10조원 등을 합치면 90조원짜리 프로젝트다. 이에 비해 해체 비용은 대략 1기당 6천억~1조원 정도다. 1조원이면 얼핏 대단한 액수로 보일수도 있으나 폐로에 짧게는 15년, 길게는 무려 60년 이상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세계최고 경쟁력을 갖춘 원전건설을 버리고 시한부인 원전해체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원전 해체시장 접근성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아직까지 상업용 원전을 해체해 본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고, 독일·일본·스위스 정도만 실험용 소형 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고 경험도 없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전체 해체시장의 74%가 우리보다 해체기술이 한참 앞선 유럽연합(EU)·북미 등 선진국에 분포한다. 제3국의 원전도 대부분 원전 선진국이 수출한 것이어서 그들을 제치고 들어갈 틈이 없다. 더 큰 걸림돌은 한 나라의 원자로는 수십 년간 운영한 그 나라가 가장 잘 아는 까닭에 리스크를 감수하며 다른 나라에 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전 해체산업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핵심기관인 원전해체연구소를 부산·울산과 경주로 분리한 것도 선뜻 이해가 안 된다. 경수로와 중수로가 다른 노형이어도 해체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 연구시설과 인력이 분산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굳이 분리한 것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나눠주기 행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욕만으로 원전 해체를 서두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원전 해체분야 육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원전산업 자체를 대신할 미래 먹거리로 과대 포장해서는 곤란하다. 비근한 예로 자동차 시장보다 폐차장 시장이 더 클 수 없고, 음식물 시장보다 음식물쓰레기 시장이 더 클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해 원전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면 해체산업이 지속 가능하기도 어렵고 실익도 없다. 최소한 신한울 3·4호기만이라도 공사를 재개해 원전 밸류체인 붕괴를 막아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던진 ‘쪼개기’ 원해연 카드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신한울 3·4호기 추진에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할 때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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