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 아직도 다 못했나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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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6   |  발행일 2019-05-06 제26면   |  수정 2019-05-06
문대통령, 先청산後협치론
적폐수사 통제 안 된다고도
주류교체가 실제 목표인 듯
적폐 아닌 주류가 청산되면
그다음은 레짐 체인지로…
[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 아직도 다 못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취임 2주년(5월10일)을 앞두고 국정운영에 관한 고언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작심발언을 쏟아내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해져 참석자 중 일부는 준비했던 충고나 제안을 하지 않고 자리를 파했다고 한다. 원로들에게 고언을 구하겠다고 마련한 자리에서 마이웨이식 국정운영만 강조했다는데, 대통령의 여러 발언 가운데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언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공감이 있다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 또 “살아 움직이는 수사를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한 말이다.

앞의 말이 논란을 일으키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선(先) 적폐청산, 후(後) 타협 기조로 보는 것은 마치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청산이 이뤄진 성찰 위에서 ‘협치·타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말이나 핵심 참모의 말이나 의미는 같다. 한마디로 아직 적폐청산이 끝나지 않았으니 적폐세력이 남아 있는 거고, 그들과는 협치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 말을 들으니 여당과 다른 야당들이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을 빼놓고 일을 처리한 배경이 짐작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회의 방해죄에 대한 형량과 피선거권 박탈 규정을 줄줄이 나열하며 한국당을 겁박한 SNS 글의 횡간도 읽힌다.

대통령은 사회원로들과의 오찬에서 검찰의 적폐수사에 대해 ‘살아 움직이는 수사 통제 불가론’을 폈는데, 이 말은 무책임하다. 억지로 현실을 외면한 감마저 든다. 문재인정부 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검찰의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는 사실상 청와대 하명(下命)수사다. 정권 출범 직후 행정부 각 부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라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시했다. 검찰과 법원, 경찰에도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속속 꾸려졌다. TF와 진상조사위 활동 결과 ‘적폐’라고 규정한 일들이 검찰로 넘어가 수사대상이 됐다. 얼마 전에도 대통령은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고, 검찰은 즉각 수사를 확대했다. 사정기관을 사실상 통할하는 민정수석의 SNS 글은 민주당의 고발사건을 배당받은 검찰에 청와대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검찰에 이른바 적폐청산의 칼자루를 쥐어주고 지금도 사회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철저 수사를 지시하면서 살아움직이는 수사를 통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하면 수긍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결국 2년 전 취임하며 ‘적폐청산’을 국정 1호 과제로 내세웠던 문 대통령은 아직도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고한 것 같다. 그럼 청산의 끝은 어디라고 보는 걸까. 어쩌면 ‘적폐’가 아닌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의 ‘주류’를 청산해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최근 공관병 갑질과 수뢰혐의 무죄를 받은 박찬주 전 육군 2작전사령관은 “적폐가 아닌 주류가 청산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고보니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진보정권 장기집권론을 주장하면서 ‘보수궤멸’을 얘기했다. 여권 안에서 정권교체에 이어 주류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들린다. 그렇다면 ‘적폐’는 앞 시절 ‘주류’에 씌운 누명일 경우도 있겠다. 주류가 교체되면 그다음은 ‘레짐체인지’로 갈지 모른다.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 이에 기초한 지배층의 뿌리를 뽑는 정치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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