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외교대잔치와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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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6   |  발행일 2019-05-06 제26면   |  수정 2019-05-06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경쟁
중심엔 中일대일로가 있어
과거의 원수와 은인 무의미
오로지 국익만을 좇는 상황
우리도 보폭을 넓혀야할 때
20190506
이정태 경북대 교수

세계가 외교잔치로 분주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김정은과 푸틴의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비슷한 시각 워싱턴으로 달려간 일본의 아베는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의 생일잔치에 참석하여 미일정상회담을 가졌다. 또한 김정은의 ‘응석’을 들은 푸틴은 베이징으로 달려가 시진핑을 만난 후 37개국 정상과 국가급 국제기구대표인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했다. 그리고 릴레이 외교잔치의 말미에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 수 발을 발사하여 외교잔치를 마무리하였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긴박한 상황전개에 다들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반추해보면, 하노이회담이 그 시작이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이벤트는 트럼프가 날린 ‘노딜’ 펀치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는 김정은의 ‘일대일로 홍보’ 이벤트였다. 뒤늦게 알아차린 트럼프가 ‘노딜’ 카드를 던지고 급히 철수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김정은은 귀국길에도 일대일로 노선을 타고 홍보활동에 전념했다. 소문으로는 김정은이 트럼프의 기습펀치를 맞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엄살일 뿐이다. 북한은 얻은 것도 없지만 잃은 것도 없었던 게임이었다. 하노이회담의 억울함을 핑계로 김정은이 푸틴을 찾은 시기도 묘하다. 방문일정을 일대일로 포럼 개막에 딱 맞추었고, 김정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푸틴은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푸틴의 움직임은 베이징이 마련한 일대일로 잔치에 돈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었고 김정은이 그 유인책 역할을 했을 게 분명하다. 김정은이 푸틴을 찾은 이유도 분명해진다. 식량구걸도 아니고 안보의존도 아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제 코가 석자인 러시아가 북한을 도울 여력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안보의존도 절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본 김정은이 러시아를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답은 분명하다. 배고픔이라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과의 만남 후에 허둥지둥 베이징을 찾은 푸틴이나 느긋하게 귀국하여 일대일로 포럼 폐막에 맞추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김정은 모두 공통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포럼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베이징이 주최한 일대일로 포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사흘간 진행된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는 푸틴을 포함한 37개국 정상과 유럽연합, IMF총재 등 40여명의 국가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했고, 총 640억달러(약 74조3천억원)의 프로젝트 협력 및 협의가 체결되었다. 2017년 제1차 포럼에 비하면 참가인원이나 사업 규모면에서 일취월장, 대박이 난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일대일로 포럼이 열리는 지난달 25~27일 트럼프는 부인 멜라니아의 생일잔치를 핑계로 아베를 미국으로 불렀다. 이유는 뻔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잔치에 가지 못하도록 볼모로 잡은 것이다. 트럼프와 아베는 골프를 치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 태평양지역’을 이야기하면서 1박2일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아베 부부가 레드카펫도 밟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트럼프 접대에 공을 들이는 그 시각, 중국의 일대일로 포럼에는 일본 인사들로 가득했다.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 특히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학자와 중국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일 양국은 지난해 10월 2천억위안(약 34조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고, 최근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해상 자위대 호위함이 참가한 바 있다. 국익에는 색깔도 피아도 없다.

외교 고수 미국도 만만치 않았다. 공식적으로 대표를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의 입을 빌려 일대일로 한반도 구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국제통화기금(IMF)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인사들은 일대일로가 백년, 천년동안 지속되는 인류공동운명체를 위한 사업이라서 지난 시기의 은원관계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보폭을 넓혀 큰 걸음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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