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꽃처럼 피어나는 감사

  • 최소영
  • |
  • 입력 2019-05-06 07:46  |  수정 2019-05-06 08:36  |  발행일 2019-05-06 제14면
“책 빌려주는 친구·밥 차려주는 엄마도 일기에 적어보자”
당연시 여겼던 일, 고마운 일로 깨달아
마음속 분노 줄이고 자존감 회복 도와
오프라 윈프리, 감사일기 써 희망찾아
현실 객관적으로 봐 긍정에너지 생겨
20190506

설렘과 긴장 가득한 새학기를 열면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고마움을 표현하며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에 올해는 아이들에게 감사하기를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는 칭찬으로, 올해는 감사로 새학기의 문을 열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거리가 없어요.”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당연한 일인데, 특별히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세뱃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큰 선물을 받은 것도 없는데요.”

애꿎은 연필로 머리를 툭툭 치거나, 머리를 애써 굴려보지만 아이들에게 ‘감사’는 생소하고 낯설기만 합니다. 쓸 것이 없어 형광색의 포스트잇만 바라보며 머리만 긁적입니다.

“여러분, 친구가 학습지를 빌려주거나 어머니가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이나, 건강하게 하루를 지내는 것이 감사한 일이 아닐까요.”

“에이, 그건 당연한 것인데 그게 뭐가 감사한 거예요.”

몇몇 친구들이 적으니까 옆짝의 감사거리를 힐끔힐끔 지켜보던 아이들도 ‘아하!’ 감탄사를 쏟으며 저마다 감사한 내용을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적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감사거리도 한두 개를 적다보니, 안개가 걷히듯 선명하게 감사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참 후에야 아이들은 서로의 감사를 나누어 보고, ‘이것도 감사한 거구나’ 하며 4월 감사표에 자기의 것을 자신 있게 붙입니다. 형광색 포스트잇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서로가 토닥토닥 격려하는 것처럼 정겹습니다.

“휴대폰이 아침마다 알람을 해주어서 지각하지 않게 된 것이 감사해요.”

“체육대회 준비로 반 티셔츠 맞춘 것이 감사해요.”

“사물함에 체육복이 끼여 못 열었는데, 친구가 도와주어 사물함 문을 열었어요.”

“친구가 떡볶이 사 준 것이 감사해요.”

“미세먼지가 없어서 운동장에서 축구한 것이 제일 감사해요.”

“급식에 맛있는 고기가 나와서 감사해요.”

“321HTE(Happy Together English)에서 퀴즈 당첨된 것이 감사해요.”

“부모동행체험으로 포항에 오빠 면회 다녀온 것이 감사해요.”

“친구가 저보고 예쁘다고 해서 진짜 좋았어요.”

“음악시간에 오카리나 불 때 잘 한다고 칭찬 들어서 감사해요.”

“오늘 아슬아슬하게 지각이 될 뻔 했는데 벌점 받지 않은 것도 엄청 감사해요.”

처음에 쑥스럽던 감사도 자꾸 적다 보니 당연함이 아니라 그게 고마움이구나 하고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날카로운 경쟁 대신에 어설프지만 따스한 감사의 말은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비스듬히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적어둔 내용을 하나하나 읽노라니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다’는 ‘새벽밥(김승희)’ 시가 생각났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어렸을 적 실망과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희망 한 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일기를 적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밥 먹는 것 외에 수십 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거창한 데서 감사 제목을 찾지 않고 일상생활의 소박한 것에서 감사 제목을 찾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개운하게 눈 뜰 수 있는 것, 빵 한 조각 먹을 수 있는 것, 눈부신 햇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감사거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 감사일기가 모여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희망을 찾고,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제목을 찾다 보면 내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멀리서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상황이라도 부정적 에너지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게 됩니다.

감사하기는 우리의 시각을 불평과 원망의 모드에서 감사의 모드로 바꾸는 일입니다. 휴지통을 말끔히 버리듯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절망을 비워내고 그 안에 감사와 칭찬으로 꽉꽉 채웠으면 합니다. 길섶에 나지막이 피어있는 봄까치꽃을 발견할 때처럼 감사거리 하나가 아이들을 환하게 피워내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였으면 합니다.

감사하기 활동은 아이들의 묵은 밭을 갈아엎어 마음 밭에 아프게 박혀있는 돌이나 유리조각 몇 개 골라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처마 밑에 쉼 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 땅을 파이게 하듯, 매월 반복되는 감사로 아이들의 자존감이 둥글둥글 커지기도 하겠지요?

시는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라고 합니다. 매월 감사하기 활동이 친구들의 마음의 행간을 읽어 서로의 마음을 따스하게 열어 기다란 울림을 주는 활동이 아이들의 마음을 연한 순 같게 하기를 기대합니다. 원미옥<대구 동변중 교감>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최소영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