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싸움닭’된 한국당의 변신은 무죄?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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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9   |  발행일 2019-04-29 제30면   |  수정 2019-04-29
웰빙정당이 투쟁 정당으로
장내외에서 야당기질 발휘
공멸공포심 따른 생존본능
평가는 긍정부정 나뉘지만
당사자로선 여지없는 선택
20190429

자유한국당이 확 달라졌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인사파동에 이어 조성된 선거제·사법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야당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국회에서 스크럼을 짜고 바닥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친다. 주말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 규탄집회를 대규모로 열였다. 웰빙정당에서 투쟁정당으로 변신했다. 박근혜정부 퇴장 이후 2년여 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가 순식간에 눈을 부릅 뜨고 손발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투톱으로 당을 이끄는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의 말과 행동에는 비장함을 넘어 독기마저 서려 있다. “지금 여의도에는 ‘도끼 비’가 내린다. 2중 3중 4중 도끼날의 야합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잔인하게 찢어버리고 있다. 독재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의 비가 내려 서슴없이 대한민국을 부수고 있다. 저 독재의 도끼날을 저는 피 흘리며 삼켜버릴 것이다.”(황교안,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시도를 비판하며) “저도 고발당했는데 같이 죽죠. 같이 살고 같이 죽죠.”(나경원, 여당이 한국당 의원 18명을 고발한데 대해)

한국당의 변신은 생존 차원이다. 총선을 1년 앞두고 공멸 위기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300석 중 260석’ 싹쓸이 발언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공포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당에서 그토록 반대한 공직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하고, 게임의 룰인 선거법조차 한국당만 쏙 빼놓고 4당이 공동추진하는 상황까지 왔으니 앉아서 당할 순 없었다. 독해지고 강해진 황교안-나경원 투톱이 생존본능을 깨웠다.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는 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내년 총선을 통해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금배지 중 상당수가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구성원 본인들에게 직접 타격이 오기 때문에 넋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 제도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을 정당은 현재 의석 6석인 정의당이다. 전체 득표율을 대폭 반영해 의석을 배분하면 20석까지도 차지할 수 있다. 범여권에 민주당 외에 또 하나의 원내교섭단체가 탄생하는 셈이다.

민주당도 전체 의석수가 줄지만 국정운영을 하는데 든든한 우군이 생긴다.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당은 총선을 거쳐 제1야당 자리를 유지하더라도 형색이 초라해진다. 정국운영에서 완전히 따돌림 받게 된다. 범여권의 마이웨이 식 독주와 독선이 이어지며 보수의 정권탈환은 점점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실린 공수처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 경찰 외에 또 하나의 사정기관이 생긴다. 공수처가 국회의원에 대해 기소권한은 없지만 수사권한이 있기 때문에 야당 탄압기구, 정권옹위기구가 될 걸로 한국당은 우려한다. 더구나 공수처와 검찰이 경쟁적으로 정권 입맛에 맞는 사정활동을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제1야당이 두 개의 여당에 둘러싸여 무기력해진 상황에선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많은 국민들의 비판을 받는다. 이유를 불문하고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한국당에도 쏟아진다. 본인들은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론도 많다. 앞으로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당이 무턱대고 물리력을 동원하고 광장으로 나가면 안 된다. 다만, 극심한 공멸의 공포심에 빠진 지금은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해야 될 처지인 건 맞다. 정권의 독주와 독선을 견제하고, 총선을 통해 좌우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제1야당의 당연한 책무다. 따라서 ‘싸움닭’이 된 한국당의 변신은 현시점에선 제한적으로 무죄다. 최종 판단은 내년 4월15일 심판의 날(21대 총선)에 국민이 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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