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패스트트랙 동물국회 따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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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9   |  발행일 2019-04-29 제30면   |  수정 2019-04-29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
준개헌 수준의 제도적 변화
타협안되면 갈등은 엄청나
입법이 되든, 무산되든 간에
탄핵이후 최대 정국 재편기
[아침을 열며] 패스트트랙 동물국회 따져보기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치학박사

“이게 국회냐.” 국회의원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들이 국회를 보는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국회에서는 그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있을 뿐이다. 선거제개편과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충돌이다. 국회선진화법 체제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초유의 상황이다. 다시 타협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말 그대로 초유의 후유증을 남길지 두고 볼 일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국회를 어떻게 할 수 없느냐고 혀를 찬다. 양비론 말고 분명하게 책임을 따지고 심판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임의 소재 역시 다시 정파적으로 갈린다. 다만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쪽의 지지 여론이 더 높다. 개혁의 명분도 있지만, 여야 4당이라는 다수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법성을 기준으로도 따져 볼 수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불리고 있는 ‘신속처리안건지정’은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다. 불법이 아니다. 다만 바른미래당에서 사법개혁특위 소속 2명을 교체(사보임)한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 국회법 제48조 6항에서는 임시회기 중에는 위원을 개선(교체)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질병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당론과 다른 입장을 가졌을 경우 교체할 수 있는 성질의 단서 조항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회기 중에도 교체해왔던 관행을 말하지만, 해당 위원이 거부함에도 교체할 경우 사정은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안건의 상정 과정에서부터 저지에 나섰다. 연일 밤샘 농성하면서 회의장을 봉쇄해왔다. 민주당 등에서는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가 국회법의 질서유지 위반을 넘어, 국회선진화법으로 강화된 회의방해 금지 조항(국회법 제165조)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된다면 심각하다. 이 국회법을 위반했을 때 기존 형법의 폭행죄나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했을 때보다 형량으로 높은 국회회의방해죄(제166조)로 처벌받게 된다. 더구나 이 제166조의 회의방해죄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만 받아도 피선거권이 5년 이상 박탈되도록 공직선거법에 규정하고 있어, 위반할 경우 정치인에게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물론 한국당의 이번 저지 활동이 위법으로까지 판단될 수 있을지, 위법 소지가 있더라도 다른 사정이 감안될지는 알 수 없다.

한국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충돌 이전에 이미 집권여당을 ‘좌파독재’라 규정하고 정면 대응해 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 논란 속에 있던 패스트트랙 추진이 구체화되면서 한국당의 강경투쟁에 불을 붙였다. 바른미래당의 무리한 특위위원 교체가 빌미를 준 점도 있다. 바른미래당의 위원 교체(사보임)는 당내 분열 갈등을 폭발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번 국회 충돌을 격화시키는 악수였다.

합법적인 패스트트랙이라 하더라도 선거법 개혁같은 게임의 규칙은 적어도 제1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된다는 게 한국당의 주장이다. 그런 사례도 없었다고 말한다. 여당에서도 그런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패스트트랙에 올리더라도 이후 최장 330일까지의 과정에서 한국당 등과 협의해 수렴한다는 것이다. 다만 내년 총선 일정이 다가오고 있어 일단 입법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한국당은 일단 패스트트랙이 시작되면 이를 주도해 온 민주당 등에서 그냥 밀어붙일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여기서 막지 않으면 안된다며 결사항전을 말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 공수처 설치 모두 87년 체제에서 가장 큰 제도적 변화의 시도이다. 거의 준개헌이라 할 정도이다. 선거제도의 경우 2002년 1인2표제 도입이 유일한 변화였다. 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바뀐다면 파격적인 변화이다. 그런 만큼 정파적 이견이 타협되지 않을 경우 갈등이 클 수밖에 없다. 논의만 반복해왔던 제도개혁을 이제는 실천하겠다는 패스트트랙 주도세력, 좌파독재 저지 구호로 맞서는 한국당, 여기에 맞물린 적법성 논란, 입법으로 이어지든 무산되든 탄핵 이후 최대의 정국 재편기로 보인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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