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책 읽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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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9 07:46  |  수정 2019-04-29 07:46  |  발행일 2019-04-29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책 읽는 사람들

지난주 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책 드림 날’로 부르기도 한다. 책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는다는 의미다. 지역에서 시민 독서운동을 펼치고 있는 ‘책 읽는 사람들’과 도서출판 ‘학이사’는 이날을 기념하여 해마다 ‘책으로 마음 잇기’ 행사를 한다. 올해도 30명 남짓한 시민과 작가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한 권씩 가지고 왔다. 가져온 책을 간단하게 소개한 후 서로 책을 교환했다. 이때 주최 측이 준비한 장미꽃 한 송이도 함께 전달했다. 참가한 사람들은 교환한 책을 읽고 그 소감을 10일 안에 간단하게 적어 보내야 한다. 책 나누기 행사를 한 후 책과 독서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문학과 예술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문무학 시인이 지갑에서 10파운드짜리 지폐 한 장을 끄집어냈다. 2017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10파운드 지폐에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 초상을 넣었다. 그녀의 사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지폐에는 처칠(5파운드), 다윈(10파운드), 아담스미드(20파운드)의 초상이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제외하고 여성으로서는 제인 오스틴이 처음이다. 문 시인은 제인 오스틴 초상 밑에 인쇄되어 있는 문구를 읽어 주었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독서 이상의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I declare after all there is no enjoyment like reading!)는 대사다. 돈에 이런 문구가 들어가다니 정말 놀랍다. 화폐 발행 당시 국내 신문에도 이 내용이 보도되었지만 못 본 사람들이 많았다. 참석자들은 지폐를 돌려 보면서 그 문구를 휴대폰으로 찍기도 했다. 문 시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한때 대제국이었던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화적 자부심을 부러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정 문인이나 예술가를 기리는 문학제나 예술제가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격으로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 상당수의 행사는 정부나 자치단체의 예산을 지원받기 때문에 그 규모가 크다. 문제는 그런 행사들이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시끄럽고 요란한 공연 위주의 이벤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와 작품은 주연이 아니고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 유지나 선출직 공무원들의 공허한 인사말이 차지하는 시간이 너무 길고 예술가와 작품을 기리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그런 야단법석으로는 지역민의 문화적 소양과 역량을 기를 수가 없다.

한 지역 사회에 ‘책 읽는 사람들’ 같은 작은 모임이 수백, 수천 개 있어야 한다. 몇 명씩 모여 밤늦도록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며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즐기고 향유하는 습관은 가정과 학교, 소규모 동호인, 애호가 모임에서 형성된다. 떡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책과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 초롱초롱한 눈빛들,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는 기분 좋은 여운, 이렇게 작은 것들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는 법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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