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자연서 배우는 교육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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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9 07:42  |  수정 2019-04-29 07:42  |  발행일 2019-04-29 제15면
[행복한 교육] 자연서 배우는 교육 원리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금강제비꽃, 까치박달, 노랑제비꽃, 태백제비꽃, 고깔제비꽃, 둥근털제비꽃,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신감채, 큰구슬봉이, 나도바람꽃, 피나물, 솜털나리, 큰별꽃, 개별꽃, 족도리풀, 양지꽃, 참꽃, 개회나무, 호랑버들, 박새, 꿩의다리, 얼레지…. 이 이름들은 전국에서 모인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들이 덕유산 능선을 따라 걸으며 만난 봄꽃들이다. 산꼭대기는 꽃밭이다. 산길을 걸어갈 때 꽃이 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사진을 담는 일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내 마음을 낮추고 비우게 한다. 비워둔 마음의 빈자리에 진한 감동을 채워준다. 그러면 내 마음을 긴장하게 하고 위축시켰던 산 아래, 아니 산에서 멀어져 있는 일터의 번뇌가 사라진다. 맑은 공기와 산사의 샘물은 덤이다. 산꼭대기에 서면 ‘아 내가 이 넓은 자연의 터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자연과 떨어져 살다보면 어느 날 내가 세상의 주인이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이 경쟁과 서열의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하나라도 있기나 하나 싶어서 우울해진다. 그렇게 우울한 나날들이 이어지면 우리는 훌쩍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자연의 기운을 채워야 한다. 도시의 나무들이 잘리고, 다듬어져 본래의 모습이 어땠는지 몰라보게 되고, 심지어는 나무 스스로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큰 산과 강에는 오래된 나무와 풀이 자신의 모습대로 아무도 찾든 말든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희고 샛노랗고 발갛고 파랗게 꽃을 피운다. 이를 보고 나도 본래 내가 누구였고 어떤 모습이 나의 본래 모습이었는지를 기억해내야 한다. 산을 내려와 살다가 다시 잊어버리면 어김없이 다시 산과 강을 찾아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이니 나도 자연의 법칙대로 스스로 있으려 해야 내 삶이 온전해지는 것이다. 왜 수도승들은 자연 속으로 가야 하는지 알겠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들은 식물의 한살이를 배운다. 나는 강낭콩이 싹트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실험장치로 알아보는 것을 넘어보려고 애를 쓴다. 가능하면 아이들을 형편없지만 학교 숲으로 데려가서 나무와 풀들이 어떻게 싹트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지를 관찰하게 한다. 먼저 마음이 가도록 한다. 신비함에 끌려 마음을 두도록 머물게 한다. 꽃이나 잎을 오감으로 맛보게 한다. 그리고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모든 생명이 같은 게 없고, 모습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하고 그것이 그 나무의 아름다움인 줄 알게 된다. 학교는 그렇게 아이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연습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과 씨앗을 16가지씩 모았다. 그리고 발아 포토를 만들어 씨앗을 심고 아침마다 물을 준다. 맨 먼저 브로콜리가 싹을 틔웠다. 이제 날마다 새로운 씨앗들이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가 모종으로 자라게 해서 꽃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식물의 한살이를 다 관찰해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식물학자처럼 농부처럼 작은 생명을 느낀다. 이틀간 관찰하지 못한 월요일 아침에는 교실보다 먼저 텃밭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그렇게 생명을 느끼고 기대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이와 같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일터로 간다. 그러면 교사들은 한 생명 한 생명 모두가 싹이 꺾이지 않고 온전히 자라 자기만의 고유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살이를 다 살게 하는 힘을 길러주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거센 바람과 폭우, 추위와 무더위는 생명을 더 강하고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견뎌내는 것만큼 생명력은 커지고 생명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 세상 어디에 내어 놓아도 끈질기게 살아내고 생명을 이어가는 야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교사와 부모들은 서로 신뢰하고 아이의 때를 기다려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교사나 학부모가 아이보다 더 먼저 더 많이 걱정하고 조심하고, 긴장하고 위축시키고 경쟁시키는 것은 아이들을 두렵게 만든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새 교실에 완벽하게 적응을 하고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도 교사와 아이들을 믿고 지켜보고 지지하면 된다. 교사들도 이제는 몇몇 지나친 학부모들의 민원은 그러려니 하고 다수 학부모들의 지지를 믿고 뚜벅뚜벅 농부 같은 마음으로 교사의 길을 가면 된다. 자연이 그러하다.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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