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장자연 리스트’의 사실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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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7   |  발행일 2019-04-27 제23면   |  수정 2019-04-27
[토요단상] ‘장자연 리스트’의 사실과 진실
최 병 묵 정치평론가

2009년 3월7일 자살한 배우 장자연씨 문제가 다시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과 더불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데 영향받은 바 크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11년전 사건이 느닷없이 불려 나오게 됐다. 필자는 2009년 당시 현역 기자였다. 사건의 전말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한다. 사건의 본질, 정확히 말하면 장씨의 자살 이유는 ‘소속사와 매니저간 다툼 와중에 자살’(경찰의 설명) 정도로.

장씨의 친구로, 장씨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주장했던 배우 윤지오씨는 며칠 전인 23일 ‘허위사실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윤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작가 김수민씨로부터다. 윤씨가 실제로 장씨와 친하지 않았고, 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도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이 김씨 주장. 이에 윤씨가 김씨를 원색 비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윤씨는 고소 당한 다음날 돌연 캐나다로 출국했다. 이젠 이 문제까지 재수사의 한 가지로 얽혀들게 됐다.

필자는 ‘장자연 사건은 정말 미제(未濟)인가’라는 의문에서 과거 기사를 찾아 봤다. 연예인 성상납 문제가 불거졌던 2000년부터 장자연 논란의 재판이 끝났을 때인 2013년 말까지 2천25건을 대상으로 했다.(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검색 창 카인즈 검색. 중앙지 기준)

경찰 수사 초반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장씨의 마지막 심경 고백이 전파를 탔다. 2월28일이란 날짜와 사인까지 있었다. 장씨 매니저 유장호씨와 함께 쓴 것이다. 이 문건의 일부를 KBS가 입수, 보도했다.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으며 협박 문자를 보내고 온갖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접대해야 할 상대에게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다.” 등이다. 누가 때리고, 강요했는지 주어가 없다. 수사 결과,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씨로 밝혀졌다. 장씨 친오빠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도 이렇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소속사 대표 김씨와 한때 김씨의 직원이었다는 유씨 사이의 다툼에 희생된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 언론은 장씨가 유씨의 지시에 따라 썼다는 문건 속의 성접대 리스트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 문건에 ‘○○일보 사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의혹 제기도 집요했다.

경찰은 41명으로 팀을 꾸려 4개월 동안 수사했다. 27곳을 압수수색했고, 14만여건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봤다. 참고인도 118명을 불렀고, 계좌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955건을 조사했다. 경찰은 폭행, 협박, 술접대 강요 등을 확인해 김종승씨, 유장호씨, 드라마감독과 금융인 등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내사 중지한 ‘○○일보 사장’은 해당 언론 계열사 전직 고위 임원의 착오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과 달리 검찰은 8월19일 접대 강요 등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은 2013년 10월11일에 나왔다. 김종승씨는 장씨를 손바닥 등으로 때리고, 장씨 자살 10일 전에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장씨를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협박한 혐의에 대해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확정지었다.

장씨의 자살 이유를 뒷받침하는 ‘사실’은 김씨의 ‘협박’ 정도다. ‘장자연 리스트’와 장씨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가설을 입증해줄 수 있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장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까. 사실을 완전히 떠난 진실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초월적 지위의 누군가가 판정해주지 않는 한 말이다.

필자의 취재 경험과 2천건 이상의 당시 관련 기사, 의혹을 종합하면 장씨 죽음의 진실은 소속사와 매니저간 다툼의 희생양이 됐다는 경찰의 진단과 장씨 친오빠의 증언에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씨 리스트는 그 다툼의 도구였을 뿐이다.

검찰의 재수사는 어느 정도나 진실에 접근할 것인가. ‘장자연 리스트가 장씨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란 범여권 일각의 ‘신념’이 워낙 강하기에 왜곡 가능성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진실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꿰맞춘다면 수사가 아니라 재구성이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 병 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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