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故 류장하 감독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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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43면   |  수정 2019-04-26
‘마블 히어로’ 극장가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뷰티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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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펜션’촬영현장의 고(故) 류장하 감독

류장하 감독의 부고가 전해진 것은 지난 2월3일이었다. 6년 전 암 판정을 받긴 했으나 자연요법으로 완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이렇게 다시 발병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최근까지 영화 작업에 몰두했던 류 감독은 재발한 암을 치료하고자 지난 1월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캐나다로 떠났다가 비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향년 53세. 류 감독의 장례는 2월23일 한국영화감독조합장으로 치러졌다. 2005년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출범한 이래 감독조합장으로 치르는 장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류 감독의 때 아닌 이른 죽음을 애도하는 30여 명의 조합원 감독들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

류장하 감독은 1996년 한국영화아카데미 12기 출신으로 1997년 배우 황신혜가 주연을 맡았던 박철수 감독의 ‘산부인과’ 연출부로 영화계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9기 출신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에 조연출로 참여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이기도 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역대 한국 멜로영화 가운데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으로 개봉 당시 서울관객 42만 명을 동원하며 그 해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을 비롯해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여자최우수연기상, 대종상 각본상, 신인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 여자연기자상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기존 멜로영화의 관습을 과감히 벗어던진 세련된 화법과 유려한 영상미로 “상업영화의 감성과 예술영화적 어법이 만나는 보기 드문 조화”(남동철), “멜로 드라마의 눈물을 거부함으로써 슬프게 하려는 야심의 멜로”(김영진), “일상에 대한 성찰의 시선이 따뜻하게 살아나는 화면”(유지나),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범종소리처럼 가슴을 뒤흔드는 영화”(하재봉) 같은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2013년 가을에는 개봉 15년 만에 재개봉하며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재개봉작으로 기록되었다.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조연출
평단·관객 호평 이끌며 존재감 부각
데뷔작 ‘꽃피는 봄이 오면’깊은 여운
사랑·상처 잔잔하게 그린 ‘순정만화’
감추고 싶은 사건 통한 감정 ‘더 펜션’
장애인·비장애인 아이들의 음악소통
한명 한명 이야기 그린 ‘뷰티플마인드’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 ‘봄날은 간다’에서 류 감독은 조연출뿐 아니라 각본에도 참여한다. ‘봄날은 간다’는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많은 한국 감성멜로 가운데 사랑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는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겨울에 시작해 여름과 가을,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에 남녀의 사랑을 따뜻한 봄에 빗대어 사랑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담론을 끄집어냈다. 영화는 청룡영화상과 영평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연출을 맡았던 허 감독은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예술공헌상을 받으며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다.

허진호 감독과 두 작품을 함께 한 류장하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를 막 끝낸 배우 최민식과 함께 자신의 데뷔작 ‘꽃피는 봄이 오면’을 내놓는다. 영화는 KBS ‘인간극장’에서 다룬 ‘건빵선생님의 약속’의 실화를 기반으로 회복과 치유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드라마였다. 헌신적인 교사에게 찬가를 선물하는 ‘홀랜드 오퍼스’나 광부들의 투쟁과 브라스 밴드를 결합한 ‘브래스드 오프’와 유사한 소재를 담았으면서도 영화는 다른 길을 간다.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환희로 솟아오르는 기복없이 주인공의 세 계절을 담담하게 그렸다. 마치 류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어른스럽게 자신을 책임지지 못했던 한 남자가 아주 조금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 같았다.

데뷔작의 흥행 부진 때문인지 류 감독이 선택한 차기작은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영화화한 ‘순정만화’(2008)였다. 영화는 류 감독 자신이 참여했던 전작들의 장점을 모으고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져온 따스한 가족애, ‘봄날은 간다’에서 가져온 연애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가져온 순하고 따스한 감성. 홍은동이나 고덕동의 단층집과 낡은 아파트촌, 동네 속에 폭 안긴 듯한 주민센터, 떡볶이와 빙수를 푸짐하게 차리는 분식점 같은 공간들을 공들여 로케이션에 담아 사랑에 상처받았거나 사랑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이 조심스레 각자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잔잔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양종현, 윤창모, 정허덕재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옴니버스 영화 ‘더 펜션’(2018)은 배우 조재윤이 분한 재덕이 운영하는 교외의 펜션을 무대로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과 사연이 담긴 펜션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감추고 싶은 사건을 통해 팽팽하게 맞서는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을 다뤘다. 그리고 ‘더 펜션’에 이어 지난 18일 개봉한 ‘뷰티플 마인드’가 있다.

‘뷰티플 마인드’(2018)는 류 감독의 전작들이 극영화였던 것에 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이들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작은 사회와 부모님, 선생님의 마음이 모인 앙상블을 표현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음악이 만드는 기적이나 치유 같은 감동의 서사를 덜어낸 자리에는 올해로 11년 된 오케스트라 관현악단 단원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고민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때 주인공 캐릭터에 집중하다 관악대 친구들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만 간직하다 이 작품으로 단원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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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감독과 공동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손미 감독은 ‘순정만화’ 각본에 참여하면서 류 감독과 인연을 이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공부하고 2008년 단편영화 ‘시향의 브람스’를 연출했다. 같은 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같은 영화제에 초청됐다. 류 감독의 오랜 영화 동료 조성우 음악감독이 제작과 투자, 음악을 맡았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예매율 97.3%를 장악하고 있는 극장가에 ‘뷰티플 마인드’가 위태롭게 개봉했다. 바라건대 눈 밝은 관객들이 ‘뷰티플 마인드’가 걸려있는 극장을 자주 찾기를, 그리하여 류장하 감독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 같은 작품을 함께 기꺼워하기를 바란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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