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9] 메멘토 모리의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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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5   |  발행일 2019-04-25 제20면   |  수정 2019-04-25
로마의 지혜, 개선장군에 “곧 죽음을 기억하라”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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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치러 본 사람은 안다.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은 표정을 지어도 보고, 망자에 대해 간략한 설명도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의례적인지. 상주가 되면, 상을 치르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장례식장과 제단의 규모에서부터 수의, 음식상의 수준, 장지를 정하는 일 등이 모두 자본의 맥락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두 번의 밤과 세 번의 낮에 걸친 이런 모든 일들을 해결하다 보면, 망자를 영영 만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슬픔을 느끼기 어렵게까지 된다. 결혼식을 치르는 신혼부부가 여행지에 가서나 결혼했다는 사실을 느끼고 일상생활을 시작하면서야 부부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것처럼, 상을 치르는 사람들 또한 장례가 끝난 뒤의 어느 날 불현듯 급습하는 절절한 슬픔에 몸을 떨 때에야 비로소 망자와 헤어져 이승에 따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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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맛볼때 죽음 잊기 쉬워
죽음 인식해야 삶의 소중함 커져

제주 4·3, 세월호 4·16, 광주 5·18
못다 푼 죽음 모두 함께 기억해야
삶 되돌아볼 상념의 공간도 필요


죽음을 죽음으로 제대로 겪지 못하는 이러한 상태는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상황에 강제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일련의 업무 과정을 거치면서 등록된다. 병원 장례식장과 상조회사, 화장장이나 묘역 같은 업체, 관공서 등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영원한 부재가 사망으로 기록된다. 며칠의 기간에 이러한 과정을 마치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거기엔 죽음이 없다. 밀려드는 일들을 처리해 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섭취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생활, 이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삶의 물결이 있을 뿐이다. 이 물결에 휩쓸려서, 초상을 치른 일 또한 이미 끝낸 수많은 업무 중의 하나처럼 저 멀리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어느 날 불현듯 예상치도 않았던 곳에서, 망자가 정말 내 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라 잠시 슬픔과 전율을 주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뿐이다. 열심히 경쟁하며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우리의 감정의 문을 서둘러 닫는 까닭이다. 한두 해가 더 흐르면 그렇게 불쑥 찾아오던 기억도 아주 뜸해진다. 죽음은 이제 여러 기관의 아카이브 속의 한 항목으로 남게 된다.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작은 정보로 말이다.

이러한 사정을 새삼 음미하게 해 주는 소설이 있다. 벨기에의 작가 디아너 브룩호번의 ‘쥘과의 하루’(문학동네, 2010)라는 경장편이다. 평소와 같은 어느 날 아침, 알리스는 남편 쥘이 식탁에 앉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느 때처럼 아침을 준비하고 있으려니 하며 몇 마디 말을 건 뒤 그의 옆에 앉아 몸을 기대고서야, 아무런 대꾸도 없는 그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노년의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살아오던 그녀에게 죽음이 급작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아들에게 전화할까, 의사에게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도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그 대신 그녀는 죽은 남편과 하루를 더 보내기로 한다. 아직 그에게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을 한 시간 만에 훌쩍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의사, 이웃 혹은 장의사들이 남편을 챙기기 시작하면, 그녀는 한 시간 안에 그를 잃어버릴 것이다. 영원히. 그러고 나면 그들은 한 시간 안에 그를 집에서 내갈 것이다. 그녀가 사진을 보고 고른 관에 담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27쪽) 해서 알리스는, 둘만의 비밀 그리고 남편에 대한 그녀의 추억과 전하지 않았던 심정 등을 떠올리며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이 소설은 일견 매우 낯설고 충격적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알리스의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죽음으로 대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을 부각한다. 죽음이 일련의 신속한 업무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사회, 해서 죽음이 사물이 되어 버리며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1초에 1.1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사망하여 전국의 장례식장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는 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생활에 죽음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각종 사망 사고나 살인 사건이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는 있어도, 그것은 수많은 뉴스 중의 한 요소일 뿐이어서 우리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사실 자체가 주목되는 경우에도 그 의미가 공유되지는 않기 십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인간 이하의 막말이 터져 나온 최근의 사태에서도 극명하게 확인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구조라 할 만한 구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무려 304명의 사람이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고 있던 배 안에서 목숨을 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이 비극을 두고, 사랑하는 가족,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지난 5년간 행해진 무관심과 냉대, 모욕, 조롱, 유언비어들도 그렇다. 이러한 만행들은,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외면하는지, 죽음이 초래하는 슬픔과 상실감에 대해 얼마나 무감한지, 가족의 죽음 지인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보여준다.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가 비인간화되는 만큼, 죽음을 망각한 삶은 공허해진다. 969년을 살았다는 므두셀라도, 불로초를 구하려던 진시황도 피하지 못한 죽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해 주는 보편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성찰, 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필사의 존재라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마련인 까닭에 오늘의 삶이 소중한 것이 된다. 젊음을 기쁘게 향유하고 늙어 아름답게 회상하는 것이나, 자식들의 기억에 남을 시간을 생각하고 추억 쌓기를 소중히 하는 것 모두,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죽음을 죽음으로 의식할 수 있을 때 스스로를 규율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힘이 배가된다. 사후를 약속하는 종교에 따라 욕망을 통제하는 신자나 영겁회귀를 깨닫고 묵묵히 현실을 긍정하는 니체의 초인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물론 우리 같은 보통사람은 그렇게 살기 어렵다. 삶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삶에 대한 성찰은커녕 죽음과 그에 이르는 노화 자체도 생각지 않는다. 성형으로 노화를 가리고 금전으로 삶의 의미를 꾸미는 사회 풍조가 이러한 태도를 강화한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려는 듯한 우리 사회의 교만함은 눈에 띄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는 바보의 만용에 불과하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넘어 어떤 지혜를 구해야 할까. 자신을 맞이하는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하며 향후 펼쳐질 더 찬란한 미래에 부풀어 있는 개선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라고 계속 말해 주는 노예를 붙여 둔 로마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메멘토 모리란 무슨 뜻인가. ‘그대는 이윽고 죽어야 할 운명임을 상기하라.’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이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살아있게 해야 한다.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새로운 꽃이 피고 신록이 빛을 자랑하는 4월과 5월, 6월에 죽음을 기리는 공동의 행사를 여는 것이 하나다. 제주의 4·3에서 세월호의 4·16, 광주의 5·18 그리고 6월의 6·25전쟁까지, 우리는 그 응어리가 못다 풀어진 커다란 죽음들을 안고 있다. 석탄일이나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이 죽음을 기억하고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의 이벤트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도시가 묘지를 품게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찾아가 생활의 경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안식과 상념의 공간으로 ‘묘지이자 공원인 조용한 도시’를 도심 곳곳에 세울 필요가 있다. 메멘토 모리를 일깨우는 이러한 시공간 장치를 통해 죽음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환기시킬 때, 상처받은 자들을 욕보이며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망언들도 가라앉고, 삶의 기쁨에 대한 겸허한 감사의 염이 우리들 생활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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