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프루스트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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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2 07:42  |  수정 2019-04-22 15:24  |  발행일 2019-04-22 제15면
20190422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2주 정도 남은 중간고사를 앞두고 선생님들은 출제하느라,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학교는 쉬는 시간에도 긴장감이 넘칩니다. 지필평가를 하지 않는 과목은 수행평가도 이루어지고 있어 긴장으로 굳어만 가는 아이들의 어깨가 안쓰럽기만 합니다. 동료 선생님과 서술형 문제의 채점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과정 평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시 위주의 암기식 수업, 인지적 영역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공교육이 학생들을 사교육에 의존하게 한다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학생들의 삶과 연계되지 않는 죽은 지식을 가르쳐 왔기 때문이겠지요. 시대는 객관식, 단답형 평가도구로 지식의 이해 수준이나 암기력 위주로 출제했던 평가 문항을 창의성, 고등정신능력 등 미래교육의 핵심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고, 과정은 경험이 만듭니다.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윌리엄 제임스는 ‘내 경험은 내가 관심을 쏟기로 동의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관심이 곧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결국 한 사람의 관심 범위를 채우는 요소들의 총합입니다. 기술철학자 제임스 윌슨 윌리엄스는 관심을 쏟는 행위가 ‘관심을 쏟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것, 추구하지 않은 모든 목표, 만약 다른 일에 관심을 쏟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가능성’을 지불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말합니다. 관심을 쏟는 일은 결국 가능한 다른 미래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런 생각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땅을 찾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는 일이다’. 프루스트는 수많은 시간 관리 전문가들이 일상으로 가장하고 있는 귀중한 시간을 찾으라고 요구하기 훨씬 이전에 느긋하게 카틀레야 난초의 향기를 맡아보라고 부추깁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여주인공이 입은 드레스에 달린 단추와 브로치 하나하나, 여주인공이 산 모자에 달린 깃털과 장식 하나하나를 공들여 묘사합니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현실에서 보통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세세하게 서술합니다. 기억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고 풍부하게 세공하고 조직하고 표현합니다.

지루한 순간을 내팽개치는 대신 보살피고 가꾸면 그 지루한 시간이 모양새를 갖추며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을 프루스트의 소설을 통해 깨닫습니다. 모처럼 그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저도 나의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허울을 내려놓게 됩니다. 평범한 10세 초등학생인 아들이 심심해하는 보통 날들이 가장 특별한 날임을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진실이라는 것도요. 프루스트의 마법은 내가 시각을 어떻게 단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 친구들과 땀 흘리면서 축구를 하는 것, 속상한 일이 있어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벚나무 밑 벤치에서의 대화에서 각각의 경험들은 과정이 되어 갑니다. 일상을 둘러보며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함을 아이들은 이미 체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에서 작가 김도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일순간에 모피를 벗어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밀하게 솟구치는 모피를 입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누르고 참아내는 것이다.’ 과정을 엮어가며 삶을 가꾸고 있는 아이들이 ‘꾹꾹 누르고 참아낸’ 그 순간을 응원하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이라 생각해 봅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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