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아니면 보호할 것인가”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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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0   |  발행일 2019-04-20 제16면   |  수정 2019-04-20
무역의 세계사
국제정세 판단의 중요한 지표인 ‘무역’
대응한 방식 따라 나라의 운명 결정돼
메소포타미아 초기교역부터 세계화까지
실크로드·아편전쟁 등 예로 들며 설명
“자유무역은 부의 불균형 확대했지만
동시에 인류 전반의 복지도 향상시켜”
“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아니면 보호할 것인가”
1898년 프랑스신문 ‘Le Petit Journal’이 열강들의 중국 분할 양상을 풍자한 만평.

“오늘은 중국과의 전쟁 첫날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고율 관세에 시진핑이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자 미국 금융업계의 큰손 레이 달리오는 이렇게 트윗을 남겼다. 혹자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강대국이 이를 경계하는 패권국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 즉,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결국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대영제국의 무역 패권은 늘 전쟁으로 이어졌다. 19세기 패권국가 대영제국은 대중 무역 불균형을 아편전쟁으로 단번에 해소한다.

국제 정세 판단의 중요한 지표이자 인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인 무역. 이 책은 바로 이 무역을 다뤘다. 1천년 전에는 실크, 금, 은, 향료, 보석, 자기, 약품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상품만 대륙을 건너올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먼 이국땅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신비롭고 낭만적이며 고귀한 지위를 누렸다. 3세기 로마 최고 수입품은 중국의 실크였다. 218년부터 로마를 통치한 엘라가발루스가 가장 좋아하던 옷감은 리넨과 섞어서 옷을 지어 입던 실크였는데, 그는 서양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실크로만 만든 옷을 걸쳤다. 그렇다면 로마까지 실크는 어떻게 전달됐을까. 중국 남부 항구의 상인들은 인도차이나를 따라 내려가 말레이반도와 벵골만을 돌아 스리랑카의 항구에 닿는 오랜 여행을 통해 실크를 배에 실었다. 스리랑카에서 만난 인도 상인은 이 실크를 인도 남서부 해안의 타밀 항구인 무지리스, 넬신다, 코마라 등으로 운반했다. 거기서는 또 그리스와 아랍 중개인이 디오스코디아섬까지 실크를 옮겼다. 무척 더디고 위험하며 힘든 여정이었다.

이처럼 책에는 기원전 3천년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교역부터 오늘날 세계화를 둘러싼 갈등, 협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세계무역의 역사를 다룬다. 실크로드 교역, 향료무역, 노예무역, 자유주의와 보호주의의 갈등,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 무역에 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전세계가 다른 나라와 직접적인 경쟁에 노출되는 세계화는 20세기 말 인터넷의 발명으로 갑자기 이뤄진 현상이 아니며 인류 전 역사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과정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기록은 당시 잉여 곡물과 금속을 교환한 거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아니면 보호할 것인가”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박홍경 옮김/ 라이팅하우스/ 692쪽/ 3만5천원

로마와 한나라 사이의 고대 교역은 수많은 중개인을 거치며 실크로드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슬람이 발흥하자 안달루시아에서 필리핀까지 이슬람 상권이 형성됐다. 이 인도양 교역 체계에서 각국은 ‘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아니면 ‘보호할 것인가’의 선택에 직면했다고 한다. 작은 도시국가에서부터 세계 최고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교역 환경을 맞았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

무역이 곧 패권이라는 대목은 흥미롭다. 포르투갈은 인도양의 서쪽 관문을 지키던 무슬림의 봉쇄를 깨고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하면서 서양 상업이 세계 무역의 패권을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포르투갈도 한 세기 뒤 네덜란드에 밀려났으며 네덜란드는 다시 영국 동인도회사에 밀렸다. 이 과정에서 패권 경쟁에서 밀려난 나라는 열강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패권 경쟁의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만들었는데, 저자는 아편 전쟁을 예로 들면서 중국이 어떻게 서구 열강에 철저히 유린당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미중 갈등의 뿌리가 되고 있음도 함께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와 종교보다는 세속적 이념이 역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은 인류 전반의 복지를 향상시켰지만 동시에 부의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무역과 인류 역사를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무역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며 각자 최고의 상품을 준비해서 교환하는 무역 행위에 참여하려는 거부할 수 없는 욕구가 결국 세계를 번영으로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는 점차 덜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무역을 통해 이웃이 죽기보다는 살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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