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일해도 月160만원…체불, 불이익 우려 신고 못해요”

  • 손선우,서민지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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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8 07:22  |  수정 2019-04-18 08:58  |  발행일 2019-04-18 제17면
대구지역 섬유노동자 인터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올해는 노동계에서 열사로 불리는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전태일이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한 지 49주기다. 50주기를 맞는 내년에는 전 열사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한다. 전 열사를 기리는 공간이 들어서고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까지 제작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대구지역 섬유노동자들은 권익보호를 받지 못한 채 참담한 노동현실을 이어가고 있다.

“월급여는 최저시급 이하이고
올해부터는 4대보험료도 연체
섬유먼지에 목에서는 쇳소리
점심시간 40분정도밖에 안돼
봉제쪽은 근로계약서 안써요”


170만원. 대구지역 섬유노동자 A씨(65)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주 5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하루 10시간씩 한 달간 일하고 받는 월급이다. 4대 보험료를 뺀 실수령액은 160만원 남짓이다. 그마저도 올해부터는 체불되고 있으며, 4대 보험료도 일부 연체되고 있다. 지난 1월 A씨 통장에 입금된 월급여는 80만원, 2월부터는 50만원씩 받고 있다. 임금지급일은 10일. 그나마 제때 받지도 못하고 있다.

올해부터 주 40시간 근무하는 노동자의 경우 1개월(4.35주 기준) 기본 근로시간 174시간에 주휴시간(주당 8시간)을 더해 총 209시간이고 월 환산 최저임금은 약 174만원이다. A씨의 월급여는 법정 최저시급을 밑도는 수준이다.

A씨가 봉제일을 시작한 것은 13년 전이다.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교복 생산·납품 일을 도우면서다. 맡은 업무는 ‘마도메·시아게’(재봉틀 작업 뒤 단추 등을 다는 마무리 손바느질·일본식 봉제용어)였다. 월급여는 190만원이었고, 임금지급이 지켜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A씨는 봉제일을 10년 넘게 했지만, 2016년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구직자 신분이 됐다. 이후 지역 소규모 섬유업체를 전전하다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1층에 입주한 섬유업체 H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월급여를 제대로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였지만, 사측은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H사에서 A씨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A씨의 동료 B씨(여·53), C씨(여·51), D씨(여·62)의 세전 월급여는 각각 130만원, 140만원, 110만원이다. 이 중 C씨와 D씨는 봉제 경력이 각각 27년, 10년에 이른다. A씨가 이들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이유는 재봉틀 작업은 기계로 이뤄지는데 반해 마도메·시아게는 수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들 그 돈 받고 어떻게 일하냐고 말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예순 넘어 다른 일을 배울 수도 없고….”

최근 취재진과 두 차례 만난 A씨의 푸념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제조공장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고 식당에 취업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지역 레스토랑 등에서 조리사로 일했다. 이때 받던 월급여는 대기업 간부도 부럽지 않았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후배들에게 밀려 그만뒀다. 그간 모아둔 돈으로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큰 매출을 내지 못해 접었다.

다시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게 된 A씨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마도메를 배워 ‘대구의 전태일’이 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점심시간(휴게시간 1시간 제공 의무화)이 40분밖에 되지 않아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취업하는 게 중요했다.

A씨는 “여태껏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없었다. 봉제쪽이 다 그렇다. 젊은 사람들은 임금체불을 고발하고 그러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근로기준법도, 최저임금법도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사업장에서 나오는 섬유 먼지(부잠사의 일종으로 실켜기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실)를 들이마시는 탓이다.

이들은 지난 2월 대구노동청을 찾아 임금체불에 대해 신고하려고 했으나 결국 직장으로 복귀했다. 신분 노출로 인한 불이익 우려와 다시 구직에 나서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의견이 갈린 탓이다. 노동당국의 소극적 대응도 한몫했다. A씨는 “대구노동청에선 고발해 놓고 다른 곳에 가서 일하라는 답변만 했다. 회사에서 해고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니 그렇게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하는 H사는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임차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은 패션연에 압류된 상태다. 20명의 섬유노동자는 수개월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H사 대표는 “회사 운영을 잘못해서 임금도 체불하고, 임차료도 내지 못했다. 체불된 임금은 조금씩 지급하고 있으며, 임차료도 일부는 상환했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서민지 수습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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