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뻘짓·저지레…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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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7   |  발행일 2019-04-17 제22면   |  수정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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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 작

의외로 반듯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답게 외모도 남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짧게 정돈된 머리가 모범생 이미지를 풍겼다.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에 초대된 김태헌 작가(54). 공무원인 아내를 ‘꼬셔(?)’ 사표를 쓰게 했다고 하니,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봉산문화회관이 전시 전에 던진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지레, 뻘짓, 지랄하기”라고 답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는 장발이었단다. “장발일 때는 가만히 있어도 아티스트 같았습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열 받아서 삭발을 했고, 그다음부터 머리가 길면 답답해서 계속 잘랐습니다.”

왜 그 좋다는 공무원을 그만두게 했을까. 작가는 “노년에도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내가 준비없이 단조롭게 나이를 먹는 게 싫었습니다. 아내가 자신을 찾아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냥 나이만 먹는다면 노년에 아내와 ‘쫑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사표를 쓰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많이 했다. “그림도 팔고 잘될 거라고 했죠, 뭐.” 걱정이 없는 스타일이다.

김태헌 작가, 봉산문화회관展
아내와 105일 동안 여행 다녀와
‘연주야 출근하지마’ 전시 기획
“어떤 작업으로 각인되는게 싫어
다른사람이 좋아하면 작업 바꿔”


공무원을 그만둔 아내와 가장 먼저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집안에 일이 생겨 6년 뒤에 떠났다고 했다. “아내의 퇴직금을 다 쓰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동남아로 떠났습니다.” 걱정이 없는 스타일이지만,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행가서 매일 한 개씩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아내와 105일 동안 다닌 동남아 여행은 책과 전시로 이어졌다. ‘연주야 출근하지 마’가 타이틀이다. ‘연주’는 아내의 이름이다.

기억공작소에 전시된 작업들은 근작이다. ‘잠화-빅보이’ ‘놀자’ 등의 연작이다. 작업을 바꾸는 이유가 남다르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면 작업을 바꿔버린다. 어떤 작업으로 각인되는 게 싫다”고 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도 싫어한다. 우리나라 군사문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작가는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작업을 한다. 내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다. 대상에 끌려다니기도 한다. 작업에 주도권이 없다”고 밝혔다. 젊을 때는 달랐다. 작업에 주도권을 가졌다. 작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도 싶어 민중미술에 몸을 담기도 했다. “놀이터가 너무 작아 그만뒀습니다.” 마음껏 놀고 싶은 작가에게 민중미술은 어울리지 않았다.

작업에 B급 정서가 강하다. 비주류적인 재미가 흘러 넘친다. 익살맞고, 때론 짓궂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구겨놓은 다음 2인용 오토바이 장난감을 놓았다. 작가는 “풍경화를 구겨버리면 길이 보이는 것 같고, 시선도 더 많이 간다”고 했다. 칼을 든 여군 피규어가 캔버스를 찢은 듯한 작품도 보인다. 제목이 ‘참 잘했죠?’이다. 입체작이 많은데, 오브제는 골동품 수집가인 청주 몸미술관 관장으로부터 얻었다. 처음에는 쓰레기처럼 보여 그냥 쌓아놓았다가 ‘놀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한번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작업이라 심심하지 않다. 호기심 천국 같은 인상을 준다. “아직도 호기심이 많습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30일까지. (053)661-3500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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