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고딕건축 양식의 정수…연간 1천400만명 관광객 등 발길

  • 입력 2019-04-17 00:00  |  수정 2019-04-17
■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떤 곳
왕가 결혼에 나폴레옹 대관식

15일(파리 현지시각) 화마에 휩싸여 위기에 처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이래 프랑스 문화의 정수가 축적·집약된 인류의 유산이다. 노트르담을 찾는 방문객은 매년 1천200만∼1천400만명으로 파리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명소로 꼽힌다.

1163년 프랑스 루이 7세의 명령으로 건설을 시작해 12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에 걸쳐 완성된 노트르담은 프랑스 고딕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루이 7세는 프랑스 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파리를 부각하고자 센강 시테섬에 있던 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형태상으로 노트르담은 가로, 세로가 각각 48m와 128m, 탑의 높이가 69m인 바실리카 구조다.

외부의 균형잡힌 구조와 다채로운 조각상,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내부의 ‘장미 창’ 스테인드글라스 세 개가 가장 유명하다.

명칭 노트르담은 ‘우리의 여인’, 즉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노트르담은 혁명 이전까지 가톨릭국가 프랑스의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정치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메리 여왕 등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열렸고, 1804년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역사성과 예술성을 자랑하는 노트르담은 문화·예술인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됐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걸작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노트르담 자체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8세기 동안 숱한 전쟁과 혁명을 거치면서도 노트르담은 건재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노트르담의 일부가 파괴되고 약탈당했지만 구조적인 손상은 없었다. 그러나 이날 화재로 ‘우리의 여인’은 800년 역사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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