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 사이] 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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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5 08:06  |  수정 2019-04-15 08:06  |  발행일 2019-04-15 제18면
[밥상과 책상 사이] 행복한 가정

시험을 칠 때마다 늘 90점 이상 받는 아이가 어느 날 70점을 받았다고 하면 상당수의 엄마는 일단 기분이 나쁘다. 일부 엄마는 전후 사정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아이를 심하게 나무라기도 한다. 심지어 최근의 생활, 학습 태도 등에서 못마땅했던 점을 찾아내어 질책하는 엄마도 있다. 아이가 70점이 최고 점수라고 말하면 엄마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다. 점수에 관계없이 1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절대 점수보다 남과의 상호 비교에 의한 상대적 점수 차이가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모든 엄마가 다 비슷한 반응을 보일까. 미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 엄마에게는 남의 점수보다 자신이 받은 점수가 쾌락 중추에 더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엄마는 내 아이가 1등이라도 점수가 낮으면 크게 기뻐하지 않고 절대 점수를 높이도록 더 노력하자고 차분하게 말하며 아이를 독려한다. 우리 엄마들 가운데도 그런 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보이는 것도 아이의 행복감을 저하시킨다. “너는 어릴 때부터 늘 착했고 항상 부모 말에 순종했으며 학교에서도 매사에 모범생이었다.” 이런 말을 계속 반복하는 부모가 있다. 아이는 때로 나태해지고 싶고 화도 내고 싶다. 간혹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다소 따분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 싶지만 부모님이 실망할까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 속에는 다양한 얼굴을 한 내가 있는데 부모가 기대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이 아니고 남이 기대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탈’을 보여주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탈’에 집중하다 보면 진짜 ‘나’는 그 가짜의 ‘탈’ 속에서 질식되어 죽을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따르면 ‘가짜 탈 속에 감금된 나’는 결국 자아를 잃어버리고 스스로에게 아주 낯설어지고 만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현모양처, 아이에게 무조건 헌신하는 엄마’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엄마는 그 탈 속에 갇혀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엄마도 때론 자유롭게 감정표현을 하며 자신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유지된다. 어떤 일이든 누가 강제로 시키거나 강요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자율적 의사결정은 인간의 행복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을 내가 자율적으로 알아서 결정할 때 수행 과정이 즐겁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남이 강요하고 기대하는 가짜의 탈 속에 갇히면 우리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

가족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아빠, 아이 양육을 위해 모든 사생활을 접었다는 엄마, 오로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는 자녀만 있는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돕고 격려하는 가정이 일반적으로 행복하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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