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닮은 서울 집중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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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0   |  발행일 2019-04-10 제31면   |  수정 2019-04-10
[박재일 칼럼]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닮은 서울 집중
논설위원

SK하이닉스는 1등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3위의 반도체 기업이다. 하이닉스가 무려 120조원을 투자해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하자 구미시가 달려들었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했던 작금의 구미 국가산단은 텅 비어있다. 하이닉스 유치로 위기탈출에다 전자기지의 옛 명성을 복원할 기대를 품었지만 실패했다. 하이닉스는 경기도 용인을 낙점했다. 수도권이다.

유치 시민대회까지 열었던 구미시와 경북도에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구미에 하이닉스 클러스터가 온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건 허상이다. 하이닉스가 처한 기업 환경이나 미래 전략을 논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수도권-서울’로 몰리는 초집중 현실에서 하이닉스 경영진이 굳이 구미로 차세대 클러스터를 택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 이천쯤에 가면 하이닉스가 보인다. 거대하다. 이곳을 두고 근 200㎞나 떨어진 구미로 가라 한다면 기업이 말을 듣겠는가. 더구나 정부가 나서 수도권 공장총량제까지 풀어주고, 땅도 매집해준다고 했는데.

2010년 김범일 전 시장의 대구시가 TK(대구경북)에 친화적이라는 MB(이명박)정권에서 삼성 바이오로직스 유치에 사활을 걸었는데, 삼성은 대구에 제대로 된 공항이 없다는 핑계로 인천 송도를 택했다. 진짜 이유는 대구가 서울에서 너무 멀다는 것일 게다. 스스로 대구가 탄생지라는 삼성은 경기도 수원에 전자산업 본거지를 튼 지 오래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로 승용차를 몰고가다 새삼 느낀 점이 있다. 경부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로이다. 고속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둔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의아하지만 정말 묘한 대목은 그 경계선이다. 경기도 오산~서울 한남대교까지 근 50㎞다. 주말·공휴일은 대전 북쪽 신탄진에서 한남까지 약 150㎞로 늘어난다. 이유는 명백하다. 막히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고속버스라도 빨리 보내야 한다는 정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나 홍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재임시절 공히 수도권 집중을 한탄했다. 추풍령 이남은 버림받았다고 했다. 실로 그렇다. 구미의 디스플레이를 뒤로 하고 경기도 파주로 간 LG는 지난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세계적 연구단지를 만들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경부선을 축으로 50㎞ 남방 한계선까지 포진한다. 가산디지털밸리, 판교, 성남 분당, 동탄, 오산에다 급기야 충남 천안까지 밀려 있다. 수도권 집중의 경계선은 버스전용차로의 구조와 같다.

이런 일화가 있다. 1960년대 자동차 산업에 진출키로 한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정 회장은 울산은 수도권과 너무 멀어 인천에 공장을 지어야겠다고 건의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그러려면 자동차산업을 접어라고 했다. 당황한 정 회장은 당부대로 울산에 공장을 짓겠다고 한다. 박정희는 국가 균형발전을 꿈꾼 모양이다. 여수나 포항, 울산, 마산이 그때 탄생했다. 당시는 권력의 지시로 산업배치를 결정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기대난망이다. 설상가상 그런 노력조차 포기한 채 오히려 하이닉스처럼 ‘뭘 풀어주겠으니 수도권으로 오세요’ 한다.

강원도 산불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 와중에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회에서 이석을 하니마니 하고 설전을 벌였다는데 걱정스러운 것은 여전히 우리는 안보실장이 산불을 끈다는 중앙집권적 사고에 젖은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마치 침몰하는 세월호를 대통령더러 건져 내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중앙의 컨트롤타워도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장인 점을 간과한다.

변방의 존재없이는 중앙이 건사할 수 없다. 지방이 없다면 어떻게 수도가 살아남겠는가. 근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자꾸자꾸 한쪽, 수도권으로 구겨넣는다. 미어터져 드디어 고속도로에도 버스전용차로를 두고 시가지를 도로화했다. 밀집한 서울은 거미줄 지하철에도 모자라 마침내 지하 100m의 GTX까지 깔아야 한다며 끝없이 땅속으로 기어들어갈 태세다. 지방으로의 분산은 그렇게 어려운가. 그래서 서울은 행복한가. 하기야 서울의 지난해 1인당 총소득은 4천365만원이고, 대구는 그 절반 남짓한 2천468만원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건 다음 기회에 써보기로 하겠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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