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쓰레기 산의 교훈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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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8   |  발행일 2019-04-08 제31면   |  수정 2019-04-08
[월요칼럼] 쓰레기 산의 교훈
배재석 논설위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환경보호 모범 국가였다. 경국대전을 보면 쓰레기(재·灰) 무단투기는 곤장 30대, 똥을 버리면 곤장 50대, 가축을 방목하면 100대로 엄하게 처벌했다. 산에서 소나무를 1그루만 베도 곤장 100대를 각오해야 했다. 요즘말로 환경범죄에 대해 과하다할 만큼 엄하게 다스린 셈이다. 여기에는 백성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비료로 재활용되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자원순환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전국의 산과 들이 불법으로 방치된 쓰레기 산으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 지방소멸 1순위에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농촌 의성에도 무려 17만3천여t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 산이 솟아있다. 폐기물 재활용 업체가 당초 허가받은 2천t의 80배가 넘는 쓰레기를 들여와 제때 처리하지 않고 방치한 탓이다. 지난달 초에는 미국 CNN 방송이 ‘한국 플라스틱 문제는 엉망진창이다 (South Korea’s plastic problem is a literal trash fire)’라는 제목으로 집중 보도해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했다. 게다가 지난해 발생한 화재로 주민들이 한동안 악취에 시달린 것은 물론, 흘러나온 침출수가 1㎞가량 떨어진 영남의 젖줄 낙동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지자체와 환경당국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치울 일이 걱정이다. 전체 처리비용이 100억원으로 추산된다니 ‘배 째라’식으로 버티는 업자의 횡포에 아까운 혈세만 들어가게 생겼다.

이게 다가 아니다. 환경부 전수조사 결과, 전국의 쓰레기 산은 235곳에 그 양이 자그마치 120만3천t에 달한다. 절반(68만2천t)이 경기도에 있고 경북(28만6천t)이 그 뒤를 잇는다. 더구나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폐기물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는 불법 폐기물 가운데 40%를 행정대집행 등으로 올해 안에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예산지원 방안이 불투명해 얼마나 이행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 쓰레기 발생량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생활·사업장·건설 폐기물 발생량이 최근 10년 사이 15.3% 증가했다. 환경부 전국 폐기물 처리현황을 보면 2008년 하루 평균 35만9천296t이던 폐기물 발생량은 2017년 41만4천626t 으로 5만5천330t 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천국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중 70~80%가 플라스틱이 차지할 정도로 쓰레기 문제는 곧 플라스틱 처리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플라스틱·고무생산자협회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7㎏으로 세계 3위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도 1인당 420개, 총 216억개로 핀란드의 100배에 이른다. ‘신의 선물’로 불리며 각광받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신의 저주’가 되어 생태계를 위협하는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등장했지만 국내 처리시스템은 동맥경화 상태다. 지난해부터 중국 수출이 사실상 막힌 데다 재활용 비율도 낮게는 5%미만에서 많게는 30% 정도로 생산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폐기물 소각시설도 2008년 952개에서 2017년 395개로 급감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신재생에너지 대우를 받았던 고형연료(SRF) 생산도 미세먼지에 발목이 잡혀 제동이 걸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폐기물 처리 비용이 치솟고 쓰레기를 싸게 처리해주겠다는 브로커가 설치면서 쓰레기 산이 늘어난다.

돌이켜보면 쓰레기 산도 결국은 우리 손으로 쌓은 것이다.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과 분리배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재활용 확대, 처리시설 확충도 필요하겠지만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폐기물이 얼마나 생산되고 어떤 경로로 어떻게 처리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플라스틱의 역습’을 막는 일이 급선무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잠시 내 눈앞에서 멀어질 뿐 머지않아 부메랑이 되어 재앙으로 되돌아온다. 정부가 나서 기업의 무분별한 플라스틱 생산과 과도한 포장재 사용을 규제하는 등 생산자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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