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생일’ 전도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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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5   |  발행일 2019-04-05 제43면   |  수정 2019-04-05
“가슴에 자식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나누려는 진정성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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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전도연이 연기한 ‘생일’의 순남 역시 먼저 떠나보낸 생때 같은 아들 수호(윤찬영)를 가슴에 묻었다. 앞서 아들 잃은 엄마의 모습을 줄곧 통곡과 광기로 표현했던 ‘밀양’의 신애가 떠오르지만 순남은 대부분의 감정을 거세한 채 자식 잃은 상처를 묵묵히 견디며 딸 예솔(김보민)과 살아간다. 전도연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영혼없이 떠도는 유령 같은 인물”이다.

‘생일’은 본격적인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룬다. 그 중심에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의 가족이 있다. 아들과의 이별(죽음)을 인정하기 싫어 매년 돌아오는 그의 생일을 미루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수호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게 쌓여만 간다. 그건 자식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부모로서의 미안함과 일종의 죄책감이다. 또한 참사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남편 정일(설경구)에게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도연은 ‘생일’의 출연제의를 두 번이나 고사했다. “‘밀양’의 신애로 이미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월호라는 소재의 부담감도 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거절할 이유가 되나 싶었다. 작품 선택에 용기를 준 지인들의 격려와 응원도 있었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따뜻하게 다독여준다는 느낌과 그 마음을 나누려는 이야기의 진정성에 마음이 와닿았다”는 전도연은 간절한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내민 이종언 감독의 손을 잡았다. 덧붙여 그는 “슬픔으로 채워진, 굉장히 힘든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순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전도연은 가냘픈 자신의 육체 위에 올려져 있는 서사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다. 가혹한 서사 안에서 그저 버텨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지만 그 버텨냄이 전도연이었기에 가능했을, 또 다른 울림으로 전해져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신의 한계를 또 한 번 넘어선 그와 오랜만에 다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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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로는 처음 다룬 세월호 참사 이야기
간절한 마음으로 시나리오 내민 감독 손 잡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순남은 다른 유가족과 달리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다. 일종의 거리두기인데 그런 순남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말씀하신 것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순남을 보려고 했다. 그건 이종언 감독님이 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특히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오열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정도로 북받쳐오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에도 그 감정이 순남을 앞서갈까봐 늘 경계했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매번 녹록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당신에게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누가 그러더라. 내가 진짜(같은 연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물론 그것도 캐릭터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진짜라는 건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정형화된 연기의 틀이나 형태를 말한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감정은 어떻고,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의 표정이 어떨지 등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녹여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가 있다. 이번의 순남 캐릭터가 그렇다. 그건 내가 느끼는 것과 남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과의 차이일 수 있다. 예전에는 남들이 보편적으로 ‘맞아. 저럴 수 있어’라고 하는 쪽에 방향을 맞춰 다가가려고 했다면 지금은 남들이 ‘과연 저럴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져도 내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생일’을 보러 온 관객들은 여전히 전도연은 어려운 역할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다. 결정을 앞두고 지인들에게 모니터를 부탁했더니 그들 역시 오열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시나리오는 좋지만 네가 너무 힘들 것 같으니 ‘하지말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내 메이크업을 담당한 송종희 분장 감독만은 ‘힘들긴 하겠지만 네가 잘 할 수 있으니 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다른 유가족들과 달리 늘 한발짝 뒤에 선 순남
북받쳐오는 감정 힘들었지만 거리감 두며 연기”


▶유가족 시사회도 가졌다.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제일 겁이 났던 순간이었다. 무대인사를 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울고 계신 분도 많고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들어가기가 겁이 났다. 무대 위에서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데 행사 중간에 유가족 어머니 한 분이 내려오더니 손수 만든 지갑을 우리에게 건네 주셨다. 그 분들이 일일이 뜨개질로 꽃모양의 수를 놓은 천지갑인데 노란 리본까지 달아서 정성스럽게 만드셨다. 그 분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는데 순간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여기에 오기까지 뭔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날은 오히려 내가 그분들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

▶매일 슬픔 속에 살아가는 순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정일의 감정을 따라갔다. 내가 순남의 감정을 다 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정일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먼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눌러담는 정일의 감정 역시 못 참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정일의 감정과 대비해서 보니 순남의 삶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도대체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남은 단절된 삶을 선택한다. 그건 감독님의 의도일 수 있지만 순남의 입장에서도 수호와의 이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호의 생일을 계속 미룬 것처럼 정일과의 재회를 미룬 건 그녀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한 방식인 셈이다.”


아들과 이별 인정하기 싫어 해마다 미루는 생일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 단절된 삶, 현실 부정



▶괴로워서 피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아파트에서 오열하는 신을 찍을 때 그랬다. ‘아파트가 떠내려가도록 운다’라고 명확히 명시돼 있는 대본을 보고 찍기 전부터 겁이 났다. 도대체 어떻게 울어야 아파트가 떠내려가도록 우는 것인지, 그렇게 오열하는 순남의 마음은 어떨지, 내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또 아무것도 아닌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어려웠던 게 정일에게 이혼서류를 건네 주는 신이었다. 그 신이 주는 의미와 부담감이 상당했기에 대사를 뱉는 것조차 정말 힘들었다.”

▶설경구와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이후 18년 만의 만남인데 어땠나.

“경구 오빠는 예전과 너무 똑같다. 18년 전이니까 정말 어릴 적 만난 건데 지금 봐도 너무 편하다. 겉으로 보면 친절하지도 않고 되게 무뚝뚝해 보이지만 항상 옆에 묵묵히 서있는 친정 오빠 같다. 사실 오빠가 영화 ‘우상’을 찍고 와서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극 중 포지션과 각자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이 원하는 바를 잘 맞춰갔다.”


“30분간 롱테이크로 담은 생일 모임 장면 인상적
모두 함께 슬픔 나누고 위로하며 뜻깊은 신 완성”



▶30분간 롱테이크로 담긴 수호의 생일 모임 장면이 인상적이다. 배우로서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었을 텐데 당시의 촬영 분위기는 어땠나.

“일단 그 날이 엄청 더웠다. 50여명의 배우가 현장에 있었는데 여름옷을 입은 게 아닌 데다 롱테이크로 가니 다들 지치고 힘들어했다. 사실 그날 촬영은 수호 가족만이 아닌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공이었다. 카메라 3대가 그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담아냈고, 카메라가 시야를 벗어날 때도 다들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연기를 도와주려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다 같이 울어주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촬영하는 이틀 내내 그랬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가장 어려운 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면서 서로에게 힘이 됐고, 결과적으로 뜻깊은 장면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아픔을 겪었든 겪지 않았든, 모두가 공감하고 위로 받는 시간이었다. 감독님이 앞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생일 모임 봉사활동도 한 분인데 그날 장면을 모니터로 보면서 진짜 생일 모임에 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종언 감독과는 ‘밀양’ 때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은 ‘밀양’ 때 스크립터였다. 당시 나를 무서워해서 눈치를 많이 봤다고 하더라. 뭔가를 얘기하려고 해도 내가 고분고분하게 들어주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웃음).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서로에 대한 호칭을 ‘언니’와 ‘종언아’라고 할 정도로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생일’ 시나리오를 나에게 건네 주면서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읽고 나서 바로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감독님으로 호칭하고 있는데, 그건 감독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영화로 평가되기 보다 소재로 공격 받는 일 우려
감독·배우 신중히 접근…시사회 후 걱정 사라져”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전히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부분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고민일 것이다. ‘생일’이 지닌 숙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부담감과 리스크를 안고라도 해야 할 이야기니까 만들었을 것이다. 세월호에 대한 피로도가 아직 쌓여있고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생일’이 영화로 평가받지 못하고 단지 세월호를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는 일이다. 감독님과 배우들도 하나하나 뭔가를 결정할 때 ‘좋아요’라고 하지 않고 ‘괜찮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만들어갔다. 제작보고회 때도 기자들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할 것 같아 너무 무서웠는데 다행히 그들 역시 우리만큼 조심스러워 했다.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조금 마음이 놓였다. 우리만 느끼는 걱정과 두려움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개봉되면 그런 우려는 많이 해소될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애 셋 키우면서 정말 힘들게 사는 친구가 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매일 신세타령을 하는 친구였는데 그를 포함해서 지인 몇 명을 ‘생일’ 시사회에 초대했다. 원래 지인들 초대를 안하는데 이번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큰 맘 먹고 초대했다. 그런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던 그 친구가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보여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라도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 친구가 말한 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지만, 사는 게 감사함으로 바뀔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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