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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산청 단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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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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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푸릇하고 거무튀튀한 ‘석성의 미로’

단계초등학교 뒤편으로 펼쳐지는 단계마을 옛 담장 골목. 강돌로 쌓아 올린 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계리 북단마을의 담장. 돌담과 흙돌담이 주류를 이룬다.
골목은 너무 좁지 않다. 산더미 같은 나뭇짐이나 연탄을 실은 손수레 정도는 가뿐히 오갔을 너비다. 담장은 높다. 홀연한 흥에 어깨춤을 추어도 담 안의 누군가는 볼 수 없고, 담 안의 누군가가 가벼운 실내복 차림으로 마당을 거닌다 한들 골목의 나는 알 수 없다. 담장은 돌이다. 종아리께까지는 큼직한 막돌을 쌓았고 그 위로는 흙을 다지고 돌을 박아 올렸다. 골목은 뻗어나가고, 꺾이고, 헤쳐 모였다가 흩어지는 석성의 미로였다. 수많은 둥근 돌들, 붉고 누렇고 푸릇하고 거무튀튀한 돌들. 이 많은 돌은 어디서 왔을까.

쇠 묻힌 둔철산, 붉은 고을이라 불린 ‘단계마을’
붉은 시냇물이 둥글려 놓은 강돌로 이은 담장돌
옛 돌담 이으면 2천200m…낮은 담이 텃밭 감싸
두개 천 사이 ‘산청쌀’ 나는 너른 들…富農 모여
파출소, 식당, 다방, 기와 지붕과 돌시멘트 담장
알록달록 색깔 입힌 단계초등, 정문은 솟을대문
2m 담, 규모 크고 권위적 고택, 고즈넉한 분위기
전통 민가·상류주택 결합 민속문화재 ‘박씨고가’


◆단계마을

산청 신등면(新等面) 단계(丹溪)마을은 신라시대 적촌현(赤村縣)이었다. 현청이 있었고, 지금도 마을은 신등면 소재지다. 적촌이 단계로 바뀐 것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이다. 이 지역은 변진 시대부터 철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신등면과 신안면의 경계에 있는 둔철산(屯鐵山)은 예로부터 쇠가 묻힌 산이라고 전해지는데 조선 초기까지 철을 주조하는 제련소가 있었다고 한다. 철광석이 붉어 시냇물도 붉고, 그렇게 마을은 붉은 고을이라 불렸다. 이 마을에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오래된 돌담이 있다. 모두 이으면 2천200m나 된다. 담장의 돌들은 모두 붉은 시냇물이 둥글려 놓은 강돌이다.

신등면사무소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선다. 돌을 쌓아 올린 낮은 담이 텃밭을 감싼다. 대문 옆으로 뻗어나가는 담장은 흙돌담에 기와를 올렸다. 간간이 담장 밑동을 꽉 잡고 있는 시멘트도 보인다. 골목에 ‘북단마을 경로회관’이 있다. ‘북단’은 단계마을의 자연부락이다. 마을 동편의 둑길에 올라서면 단계천이 내려다보인다. 붉은 시냇물이다. 단계천 냇가는 ‘이순신백의종군행로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1597년 선조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로 향하던 장군이 단계천 냇가에서 아침밥을 지어먹고 합천으로 떠났다고 한다.

물은 적고 강돌이 많다. 그 많은 돌이 담장이 되었어도 여전히 돌이 많다. 물은 남쪽으로 흘러 면소재지 남단 즈음에서 신등천과 만난다. 두 개의 천 사이는 ‘산청쌀’이 나는 너른 들이다. 예부터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다. 자연히 세도가와 부농이 모여 살았고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제방이 없었던 시절에는 수해가 잦았다. 사람들은 마을은 배(舟) 형국인데 돛대와 삿대가 없기 때문이라 여겼단다. 그래서 마을 고목나무에 돛대와 삿대를 걸쳐 두었더니 수해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목수들이 둑 위에 정자를 짓고 있다. 내일의 누군가는 풋풋한 나무냄새 나는 새 정자에 앉아 봄을 맞겠다.

북단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2차로 도로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 가가 모두 기와를 얹은 돌 시멘트 담장이다. 파출소와 보건소 대문, 식당과 다방 등에 기와지붕이 올라 있다. 그들은 양옥의 수평 지붕과 낮은 컬러 강판 지붕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 거리의 돌담은 한때 새마을 사업으로 올린 시멘트 담장이었다. 1980년대에 단계마을을 한옥 보존단지로 조성하면서 많은 건물에 기와지붕 공사가 이뤄졌고 담장도 차츰 돌담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단계장로교회 옆에 으리으리한 집이 있다. 순천박씨 소유의 ‘율수원(聿修園)’으로 전통한옥 체험시설로 쓰이는 집이다. ‘율수’는 시경에 나오는 말로 ‘조상의 덕을 이어 스스로 자신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문은 잠겨 있고, 2013년에 한옥부문 건축대상을 받았다는 안내판이 있다. 거리는 너무 고요하다.

◆산청 단계마을 옛 돌담

용담정사. 용담 박이장을 기리는 사당으로 후손들이 단계리로 이주해 와 일제 강점기 때 지었다.
단계초등학교의 솟을대문. ‘삭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조금 낮은 담장 너머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학교가 보인다. 단계초등학교다. 너른 운동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학교의 정문은 솟을대문이다.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삭비’는 ‘어린 새가 날기 위해 쉼 없이 날갯짓하는 것’을 말한다. 대문 앞에 커다란 정자가 있다. 마치 서원의 누마루 같다. 학교의 서쪽 담장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서자 골목 앞에 ‘단계마을 옛담장’ 안내판이 있다. 단계마을의 아름다운 돌담은 여기서부터 빛난다.

마을 내 전통 주택들은 조선 후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에 건립된 부농 주택들이다. 집들은 규모가 매우 크고 권위적이다. 담은 2m 정도 높이다. 발꿈치를 들어도 집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담 위쪽에는 기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넓고 평평한 돌을 담장 안팎으로 내밀어 쌓았다. 솟을대문의 당당한 고택들은 일부지만 높고 긴 돌담은 마을 전체에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입힌다.

골목을 몇 번 꺾어 들어가자 담장 너머로 푸른 향나무 휘날리는 고택이 나타난다. 경남 민속문화재 제4호인 ‘박씨고가’다. 대문은 열려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집안은 어수선하다. 사랑채 툇마루에 안전모가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집은 수리 중이다. 박씨고가는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와 곳간채가 어우러진 ‘ㅁ’자 평면을 갖춘 집이다. 전통 민가와 상류 주택의 요소가 적절히 변형·결합되어 경남 서부지방 중류 농가의 대표적인 살림집 모습을 보여준다. 안채 마당의 우물, 사랑채 아궁이 위의 커다란 지붕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박씨고가에서 서쪽 골목으로 빠져나가면 낮은 산 아래 ‘용담정사(龍潭精舍)’가 자리한다. 조선 중기 고령지역에서 활동한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을 기리는 사당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용담선생문집’은 규장각에 소장돼 있을 정도로 문학적 가치가 높다. 용담정사는 그의 자손들이 단계마을로 이주해 일제강점기 때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에 ‘여재당(如在堂)’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의 글씨라 한다.

단계마을은 지금 ‘관광자원개발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담장 정비사업, 마을안길 정비사업, 전통한옥 정원화 사업, 전통한옥 체험프로그램 개발 등을 골자로 2021년까지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변하기 전에, 보고 싶었다. 따뜻하거나 차가운 돌들을. 돌과 흙을 부여잡고 자라는 여린 식물들의 기댈 자리를. 따뜻하고 고독한 미로를. 담벼락에 붙어 선 음지와 담장을 타고 흘러넘치는 양지가 가득한 골목을. 지금의 이 돌담길을 눈에 새겨 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광주대구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함양 분기점에서 35번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 산청IC로 나간다. 3번 국도를 타고 선유동계곡 방향으로 가다 정곡삼거리에서 60번 지방도를 타고 계속 가면 신등면소재지에 닿는다. 면사무소 근처에 주차를 하고 신등가회로를 따라 가면 단계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뒤편에 단계마을 옛담장 안내판이 있다. 마을 전체의 고택 등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나 친절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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