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예쁜 것에 대한 편견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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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4   |  발행일 2019-04-04 제31면   |  수정 2019-04-04
[영남타워] 예쁜 것에 대한 편견

나는 꽃을 좋아한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꽃을 좋아할 것이다. 꽃의 모양은 물론 향기까지 매혹적인 데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꽃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다. 꽃을 보면서 힐링을 하는 감상자가 많고 화가도 작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화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리라. 화가들이 꽃그림을 많이 선보인다는 것은 꽃그림에 대한 반응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미술시장을 들여다보면 꽃그림이 마냥 찬사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대중적 사랑을 받을지는 몰라도 이를 평가하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꽃그림의 가치는 저평가받곤 한다. 미술작품의 가치를 판매가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으나 미술시장에서는 그림의 가격이 가치라는 판단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꽃그림의 가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꽃을 주소재로 그리는 한 화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꽃이 좋아서 꽃그림을 그리는데 팔리는 그림을 그린다는 따가운 시선이 때로는 회의를 들게 한다는 것이 말의 요지다. 그래서 언젠가는 비구상화쪽으로 방향을 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꽃그림을 예로 들었지만 꽃을 포함한 구상화, 특히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아름다운 소재를 담은 그림에 대한 평가로 확대해 볼 수 있다. 많은 작가가 소재로 삼고 미술시장에서 거래도 많이 되고 있으나 자칭 미술애호가라는 이들 상당수는 꽃그림에 다소 인색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 그림은 문외한이나 초심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도 있다.

최근 단색화그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구상화에 대한 반응은 더욱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로 미술시장이 얼어붙고 있는데 구상미술이 강한 대구지역 미술계는 이런 바람을 타고 더욱 위축되고 있다. 지역에 구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많다보니 구상작품 중심으로 취급하는 화랑도 상당수에 이르는데 이들 역시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미술시장의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림을 감상용이 아니라 투자가치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구상화에 대한 평가는 높아질 법한데 한눈에 봐서는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는 비구상화나 추상화에 지역미술, 나아가 한국미술이 빠져있는 것은 왜일까. 난해한 이들 작품에서 작가만의 철학이나 사유의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바람도 있겠지만 이런 그림들이 미술시장에서 고가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역의 한 미술평론가는 한국미술계가 ‘미술시장’이 아니라 ‘시장미술’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품이 거래되는 곳에서 미술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 투자가치라는 잣대로만 작품을 보다보니 ‘작품=돈’이라는 관계가 형성이 되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 즉 유명작가의 작품이 아니면 판매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수예술에까지 경제적 잣대가 난무하니 미술시장이 결국 잘 팔리고 비싸게 팔리는 작품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양상이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결국 시장미술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그 평론가의 설명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전원풍경이나 꽃, 행복에 빠져있는 사람의 모습 등 예쁘고 즐거움을 주는 그림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은 있다. 예술에도 탁월한 시각을 보여준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만일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 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쁜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쁜 미술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불만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만일 인생이 고단하지 않다면, 무언가 부족하지 않다면 그 아름다움은 그만큼 강한 인상이나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불만족에서 오는 아쉬움, 부족함을 예쁜 그림을 통해 채워나가고 위로받는다. 나 역시 이런 미술애호가다.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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