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배우 故 장자연 10주기에 다시 생각하는 영화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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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9   |  발행일 2019-03-29 제43면   |  수정 2019-03-29
故 장자연 사건 모티브…약자 향한 살인 낱낱이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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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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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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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故 장자연

2019년 3월7일은 고(故) 기형도 시인의 30주기였다. 10대 시절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알게 되어 오랫동안 품어왔던 시인에 대한 애정으로 30주기 낭독회도 조촐하게 열었다. 그리고 이날은 기 시인과는 다른 이유로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한 배우의 10주기도 겹치는 날이었다. 배우 고(故) 장자연이다(20년 터울의 이 둘은 모두 서른을 앞둔 29세에 세상을 떠났다).

장자연은 198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2006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26세에 롯데제과 CF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역시 2006년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2009년 1월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자칭 ‘써니’라는 닉네임의 박선자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자신이 등장하는 드라마 촬영 분을 모두 마치고 하차한 뒤 2009년 3월7일 경기도 분당의 집에서 데뷔 이후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실명 리스트와 지장이 찍힌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 인사 성상납 강요 리스트
문건 남기고 자택서 목숨 끊어
연예계 어두운 면 드러나 충격

최승호 감독 ‘노리개’(2013)
제작·투자·캐스팅 과정 어려움
제작비 굿펀딩, 배우 노개런티

故人 유작 ‘펜트하우스코끼리’
SNS서 또다시 화제 되기도



장자연이 세상을 떠나고 며칠 후 언론을 통해 드러난 문건에는 룸살롱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받으며 방에 갇혀 폭행을 당해왔던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동안 쉬쉬하며 추측으로만 돌던 연예계의 어두운 면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유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문서를 태워 은폐하려 했고 경찰도 자살 이유를 악플과 우울증으로 단정 짓고 수사를 중지하려다 문건 내용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다시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문건에 실명으로 나오는 이들 가운데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장자연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영화 ‘노리개’는 제작과 투자,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어려움에 가로막혔다. 대기업과 매니지먼트들은 영화의 참여를 꺼려했고, 그로 인해 제작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마동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와 제작스태프들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해 다 함께 뜻을 모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굿펀딩’을 통해 진행된 ‘노리개 개봉지원 프로젝트’는 진행 3일 만에 목표액의 10%를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는 것은 물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국민적인 관심을 입증했다. 마감일까지의 모금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의견과 영화가 더 많은 관객에게 알려지고 성공적으로 개봉하길 원한다는 요청과 문의가 쇄도해 모금 기한을 연장하기도 했다.

한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극 앞에서 한 열혈기자와 여검사가 진실을 쫓아 거대 권력 집단과의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실제 현실에서의 성상납 문제, 더 나아가 약자를 향한 잔혹한 살인행위를 낱낱이 고발하는 ‘노리개’는 2013년 4월 개봉해 16만9천6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내려오긴 했으나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재개봉 요청까지 나오며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지금은 ‘마블리’라 불리며 한국영화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당시 ‘노리개’는 배우 마동석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였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이장호 기자는 영화 ‘다이빙벨’과 ‘김광석’을 연출하기도 한 ‘GO발뉴스’ 이상호 기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마동석은 이 기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사회부 기자들에게 기자 역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단다. 민감한 소재 탓에 제작진들이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매력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진실을 그리고자 한 영화의 취지에 동의해 직접 출연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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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감독

‘노리개’의 연출을 맡은 최승호 감독은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 HD 제작지원 사업에 당선돼 영화 ‘헬로우 마이 러브’(김아론 감독)의 제작자로 영화계에 입문해 홍대 인디 씬 최초의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영화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를 통해 연출 데뷔를 했다. 원래 가야금을 소재로 한 극영화를 만들려고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정민아의 버스킹 계획을 듣고 이 과정을 담은 것이었다. ‘노리개’는 최 감독의 첫 장편극영화 연출작이었다. 현실의 부조리를 치열하게 탐구해온 감독의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는 영화는 관계자들의 개인 자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했고, 대부분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노리개’와는 또 다른 이유로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정승구 감독의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강석범 감독의 ‘정승필 실종사건’과 함께 장자연이 출연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개봉 전 장자연이 세상을 떠나면서 유작이 되었는데 영화사 측은 장자연의 베드신을 무삭제판으로 개봉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영화에서 장자연은 배우 지망생으로 출연해 상대배우 조동혁과 베드신뿐 아니라 욕조에서 자살하는 섬뜩한 모습을 연기했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고(故) 장자연의 명복을 빈다’라는 문구를 넣어 애도의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고인의 죽음을 마케팅으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영화는 평단과 대중의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고 SNS상에서 ‘10년 전 차라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던 한국영화’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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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증언’(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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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최근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동료 배우 윤지오가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을 펴내고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출석해 진실을 밝히는데 애쓰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력 언론사 ‘방사장’ 때문일 것이다. 최근 MBC ‘PD수첩’을 통해 드러난 그 집안의 사정을 보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하지만 진실은 더디더라도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라고 든 촛불이고, 그러라고 바꾼 정권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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