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뒤샹의 혁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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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5 08:15  |  수정 2019-03-25 08:15  |  발행일 2019-03-25 제22면
[문화산책] 뒤샹의 혁명성
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엊그저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 전시(4월7일까지)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역대 최고 관객 기록을 세울 기세라는 언론보도에 걸맞게 줄을 지어 관람해야 했다. 가히 신드롬을 넘어 놀라울 따름이고, 전문가의 입장에서 이 현상의 연유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미술대학 강의에서 뒤샹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마다 그것을 체득하는 학생을 거의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또한 한국미술계에서 온전히 뒤샹의 시선으로 창작하고, 비평하고, 발언하는 미술인들을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 무렵 세계 여러 기관에서 지난 ‘20세기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미술가가 누구인가’라는 밀레니엄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예외 없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미술가가 바로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이었다. 왜 뒤샹이었을까. 그것은 뒤샹이 시각적·심미적 미술(즉 망막미술)로부터 개념적·비판적 미술로 미술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오늘날 컨템퍼러리 아트(현대미술)의 근간이 되고 있는 개념미술의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뒤샹의 혁명성은 1917년 기성품 변기에 사인을 한 ‘샘’을 통해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기존의 미술뿐만 아니라 문화 및 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미술을 새롭게 정의한 데 있다. 기존의 정의가 작가의 ‘손기술’을 통해 독특한 심미적 이미지나 오브제를 ‘제작’하는 데 있었다면, 이제 미술(작품)이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에서 보듯, 손기술보다는 작가의 ‘개념(idea)’에 의해 기존의 오브제나 제도 및 사상에 대해 새로운 지각 및 사유 방식을 촉발하는 데 있다. 이러한 혁명적 뒤샹은 1960년대에 부활되어 기존의 권위주의 문화를 혁파하는 데 앞장섰던 개념미술가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뒤샹이 중요한 다다이스트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자국의 우월한 문화를 지켜야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호응하여 참전했던 일군의 예술가들이 다름아닌 다다이스트였다. 그런데 그들은 야만적인(?) 게르만 민족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우월한 문화와 야만적 문화의 이분법의 허구성을 깨닫고 기존의 예술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반예술(anti-art)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뒤샹 신드롬은 앞으로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낳게 될까. 뒤샹처럼 우리 미술인들이 과연 권위주의 문화에 맞서 어떤 새로운 예술을 펼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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