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독립장편영화 ‘내가 사는 세상’ 연출 최창환 감독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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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3   |  발행일 2019-03-23 제22면   |  수정 2019-03-23
“영화는 내가 사회문제와 연대하는 방식…청년들 현실 ‘내사세’ 담아”
20190323
최창환 영화감독이 지난 7일 개봉한 자신의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창환 영화감독에게는 ‘노동 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노동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꾸준히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만원(2006), 호명인생(2008), 그림자도 없다(2011)가 대표적이다. 이 3편의 단편 영화는 일명 ‘노동 3부작’으로도 불린다. 지난 7일에는 그가 만든 장편영화 ‘내가 사는 세상’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지난해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돼 ‘부당한 노동환경에 지쳐가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매일을 견뎌가는 청춘의 민낯을 담담하게 포착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수상했다. 최 감독은 “영화는 사회 문제에 대해 내가 연대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늘 영화 안에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6세때부터 돈 벌며 불합리 많이 경험
영화로 만들다보니 ‘노동 3부작’ 탄생
지역 독립영화協 의뢰로 장편 찍게 돼
제작비 부담에 고작 4일 촬영으로 끝내
대구 다양성영화 지원금 턱없이 부족해
멀티플렉스 새벽·아침시간 상영 아쉬워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해달라.

“젊은 청년들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늘 봐왔던 상황이다. 당시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굳이 음악이 아니라도 공장에서 일을 한다든지 해도 지금은 계약서를 쓰지만, 그때는 ‘계약서’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든 사회였다. 어릴 때 섬유공장 몇군데에서 일을 했는데, 최저시급을 안 지키는 건 그 시절에는 비일비재했다.”

▶전태일 47주기 대구시민 노동문화제·민예총 대구지회·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공동제작했다.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전태일 열사의 고향인 대구에서 매년 문화제를 여는데 그 안에 노동 관련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가 있다. 2017년 영화를 틀지만 말고 영화를 제작해보자는 얘기가 문화제 내부에서 나왔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권현준 사무국장에게 의뢰가 왔고 권 사무국장이 나의 전작을 알고 있어서 작품을 만들게 됐다. 공동제작하게 된 건 제작비 부담이 커져서였다. 독립장편영화는 보통 짧게는 10일 길게는 20일 정도 촬영하는데, 이 영화는 4일에 걸쳐 촬영했다. 촬영 회차가 늘어나면 인건비가 올라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근로계약서와 같은 노동관련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데 안 되고 있으니까 그게 너무 답답했던 것 같다. 근로계약서를 바탕으로 인간적인 문제가 따라와야 하는데 인간적인 문제가 더 앞에 와버리니까 너무 불합리한 거라고 봤다. 영화를 보면 지홍(민규랑 친한 형)과 민규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면이 크다. 민규가 필요해서 악기를 사달라고 하거나 용돈을 달라고 하면 충분히 줄 수 있는 고마운 형인데, 계약서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돌변한다. 빨갱이라고 욕을 하고.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인데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런 장면들이 꽤 사실적이다. 본인의 경험인가.

“딱히 나의 경험이라기보다는 늘 들어오고 본 것들이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웨딩 관련 아르바이트부터 홍보물 촬영 등을 했고 영화로 돈을 번 건 상금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하지만 영화로 돈을 못 버는 상황이다. 대중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가치가 숭고한 건 맞지만 오로지 공장에서,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만이 노동 행위이고, 예술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벌어야 해서 16세 때부터 일을 했는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영화를 만들게 됐는데, 노동영화를 찍겠다는 건 아니었고 내가 느끼고 경험한 걸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노동 3부작’ 중 첫번째 영화를 만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지만 못 보더라도 나는 노동영화로 연대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예전에 다른 영화로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한 관객이 ‘감독님은 이 영화로 무엇을 말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때는 이런 말을 하면 건방진 것 같아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후에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본 친구가 노동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영화제에서 못했던 대답이 그때 떠올랐다. 한 명이라도 내 영화를 보고 변하는 게 정말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식으로 연대하는 것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다.”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영화광이었다. 누아르, 형사물 등 장르 영화를 좋아한다. 19~20세 때 스태프로 시작해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20대 초반에 서울에 올라가 스태프로 일했다. 20대 후반에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2012~2013년쯤 지금 함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완 감독과 함께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단편영화제작 워크숍 강사로 일했는데, 이때 영화에 열정있는 사람을 많이 만났고, 이들과 계속 작업하고 싶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같이 작업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열정과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열악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역 영화계의 활동이 활발하고 각종 영화제에서도 꾸준히 수상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의 영화인들이 영화를 찍어서 각광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한다. 영화과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감독 개개인의 열정이 크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대구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주면 좋을 텐데 사실 힘들게 영화를 찍고 있다. 대구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이 있지만 그 금액이 턱없이 적다. 장편 기준 2천500만원을 지원하는데 장편영화를 찍기에는 부족하다. 몇년 안에 대구에서 만든 영화가 칸, 베를린 영화제에 갈 것 같은데 지금처럼 지원이 적은 상황에서 지역 영화인들이 자력으로 만들어 냈다고 하면 조금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영화를 선택한 데 대해 후회가 없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창작이라는 게 밥을 먹고 사는 것처럼 어느 순간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처럼 되는 것 같다. 나한테 살 수 있는 집과 차비만 있으면 계속 영화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게 생긴다. 지난해 영화 관객 중 독립영화를 본 관객이 전체의 0.5%밖에 되지 않는다. 신문 지면 등을 보면 다양성 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일반 관객이 독립영화를 몰라서 못 보는 게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를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2시나 아침 7시에 상영하는데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개봉 2주차가 넘어간 ‘내가 사는 세상’도 이제 멀티플렉스에서는 막이 내려가고 있다. 배우들과 스태프가 러닝 개런티 계약을 했는데 영화가 잘되면 잘될수록 배우와 스태프가 돈을 많이 받는 구조라 조금 아쉽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장르 영화를 찍든 액션 영화를 찍든 늘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스며있을 것 같다. ‘내가 사는 세상’에 출연한 배우 곽민규와 제주도에서 서핑영화를 찍었는데, 청년이 서핑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영화 안에 예멘인이 나오고, 이주민 2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회적인 문제나 약자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그런 걸 계속할 것 같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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