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우상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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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42면   |  수정 2019-03-22
세상 향해 진실 감추는 자, 세상 향해 분노하는 자
20190322

차기 도지사로 유력한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청렴한 정치인으로 대중의 존경과 신망이 두텁다. 그런 그가 암초를 만났다. 뺑소니 사고를 낸 아들이 아내와 함께 이를 은폐하려 한 것이다. 잠시 갈등했던 구명회는 자신의 정치 인생을 지키기 위해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들을 자수시키고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한편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아들 부남이 신혼여행을 떠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유중식(설경구)은 절망한다. 사고 당일 부남의 행적에 의문을 품은 중식은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현장에 함께 있다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의 행방을 쫓는다.

‘한공주’(2013)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의 신작 ‘우상’은 한 사건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있는 세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각기 다른 동기로 출발선에 선 이들은 자신만의 꿈과 신념을 향해 폭주하듯 달려간다. 구명회는 정치적 야망을 위해, 유중식은 핏줄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조선족 최련화는 생존을 위해 악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에 거미줄처럼 엮인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
정치인 이중성·양극화 계급·불법체류자 불편함 드러내



상식과 정도에서 벗어난 이들의 욕망은 결국 한 지점에서 강하게 마주친다. 처음부터 목적과 방향이 달랐기에 이들의 만남은 삐끗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욕망의 근원을 우상으로 상징한다. 그리고 그 근원이 맹목적으로 변하는 순간의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그게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극 중 대사처럼 ‘우상’은 정확한 사고를 방해하는 절대적 대상으로서 우상의 오류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뺑소니 사건의 진실을 좇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듯 하지만 이 영화가 함축하고 있는 이야기는 심오하고 다층적이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세 인물을 통해 정치인의 이중성, 양극화된 계급, 불법체류자 문제 등 여전히 불편함으로 남아있는 사회 시스템을 건드려 이와 연관된 인물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묵묵히 지켜본다. 다만 이 과정이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접근방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영화는 이야기 곳곳에 공백을 남겨놓음으로써 퍼즐의 완성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배제했다. 대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가 144분의 러닝타임을 채워간다. 이야기가 난해하거나 복잡한 건 아니지만 분실된 퍼즐 몇 조각으로 인해 극의 흐름을 이해하고 읽어나가는 게 쉽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이라 느껴질 만큼 영화가 불친절한 건 사실이다.

그 점에서 “영화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 이수진 감독은 “16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특정한 사건을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 문제가 군데군데 깔려있다. 그런 문제들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편했지만 진심어린 공감을 느꼈던 ‘한공주’에서의 원숙미를 ‘우상’에선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상징과 은유만 있을 뿐 이야기의 주제도, 장르적 쾌감도 명확하게 읽혀지지 않는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의 열연마저 납득하기 어려운 상징과 은유에 묻혀 버렸다. 기존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이 낯섦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장르:스릴러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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