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대구 달성군 마비정 벽화마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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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37면   |  수정 2019-05-01
궁핍한 어린시절 벽화 담장은 추억의 얼룩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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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골집의 마비정 농가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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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정 마을 집담에서 골목을 바라보는 오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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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박이 달려 있는 마비정 마을의 옛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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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정 벽화마을의 상징인 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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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정 마을 들머리인 시골풍경의 벽화.

봄 아지랑이 아롱거린다. 산과 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심호흡을 한다. 시야가 멀어질수록 봄은 더 꿈틀꿈틀하며 꽃망울이 부푼다. 어차피 3월은 싱그러운 바람결에 머리를 감는다. 막힌 콧구멍을 탁 틔우는 미나리 냄새에 정신이 향긋하다. 화원을 지나면서 개나리, 버들개지가 자욱한 꽃샘바람으로 둔갑한다. 지금 저 들판으로 누가 오고 있는가. 사랑이란 화관을 쓰고 있는 화원은 꽃과 꽃모양의 동산이다. 나의 겨드랑이에도 꽃이 핀다. 점점 약해지는 귀에 들리는 황홀한 물소리. 화원은 이른 봄에 떠나는 꽃 마중의 화전놀이 터. 그 명성 짜한 남평문씨 세거지 인흥 마을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마비정 마을 주차장에 도착한다. 들머리에 마비정 마을 유래와 관광 안내판이 있어 살펴본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벽화마을. 3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골오지 마을. 궁벽한 삼필봉 자락에 동화나라의 질박한 그림처럼 벽화마을은 그윽하고 숭굴숭굴하다.

삼필봉 자락 오지 35가구 옹기종기
처마 밑 메줏덩이·외양간·장독간…
소등에 타고, 뻥 소리 즐거운 아이들
가난한 시절 가슴 아리는 시골 풍경
따뜻한 마음, 빈그릇 마다 넘치는 情
들녘 아지랑이, 꿈자극 환상의 신기루

미풍양속 인정 가득 밴 맛의 촌두부
장수기원 거북바위·남근갓바위 설화
물레방아·포토존…그리운 시절 여행

마비정 들머리다. 곰비임비 입체감의 초가집 전경, 담장에 그려져 있다. 지붕 위에 박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처마 밑에 매달린 메줏덩이, 마루 위 콩나물시루는 시골집의 정겨운 풍경이다. 담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행인을 지켜보는 오누이의 삥싯 웃는 익살스러운 모습. 부엌에서 군불 때는 엄마, 사발과 보시기에 쓰여 있는 복(福)과 희(囍)는 찬장의 간절한 축원이다. 할매와 엄마의 가족사랑은 장독간에도 있다. 부엌문을 열면 뒤뜰 장독간에 배흘림의 옹기들이 잔뜩 있고, 하루에도 수없이 들락거리는 할매와 엄마의 손맛이 있고, 밤하늘 북두칠성을 담아두는 정화수 한사발의 치성(致誠)이 있다. 부엌과 장독간으로 이어지는 이 땅 어미들의 길은 밥을 하늘로 받드는 조왕신의 비손, 자식과 남편에 대한 애타는 한숨이 시나브로 서려 있다. 그 부엌에 장독간에 얼마나 많은 어미들의 아픔이 켜켜이 쌓였는가. 또 얼마나 남몰래 흘리신 눈물이 흙을 적시고, 잦아들던 밥솥의 김에 상처를 뜸뜨시던 흰옷의 여인들, 우리의 어머니. 물동이에 둥둥 뜨던 물바가지, 환한 달빛이 있고, 어미 소의 눈망울이 있다. 쇠죽을 끓이던 아이, 개밥을 챙기시는 할머니. 아버지의 나뭇짐이 아궁이에서 타고 방고래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배가 좀 허해야 몸이 편한 겨. 마음은 화롯불 같아야 모두가 따신 것이여. 어른들의 구시한 숭늉 같은 말씀에 무럭무럭 커가는 몸과 마음. 이어 절구, 외양간, 소여물통, 우리나라 시골 눈에 익은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러한 궁핍한 시골 풍경은 가슴 아리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추억에 날개를 달아 어린 시절로 날아간다. 광복되고 6·25 난리가 휴전되고, 1955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그때 시골의 뼈저린 가난을 잊지 못한다. 봄이면 춘궁기라 먹을 게 없어 부황이 든 누런 얼굴의 마을 사람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 하든 그 시절. 3월이면 들판으로 나가 나물을 캐 보리죽을 쑤어 먹던 배고팠던 시절. 그런 굶주림과 침묵은 도리어 우리를 경건하게 했다. 언어는 따뜻하고 작은 음식도 나눠 먹는 인정이 빈 그릇마다 넘쳤다. 그리고 들녘의 아지랑이는 꿈과 전설을 자극하는 환상의 신기루였다. 저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길 따라 예쁜 철이 누나도 옆집 윤이 식구도 모두 도시로 떠났다. 그들이 읍에서 버스를 타고 떠날 때 비포장 길에 펄펄 날리던 흙먼지는 마음의 아지랑이고 신기루였다.

길은 이어지고 담장은 추억의 얼룩버짐이다. 우물에서 등목하고 순번을 기다리는 아이들. 마을이 한 식구다. 불 피워 솥뚜껑에 뭔가 구워먹는 아이들. 소 등에 타고 소싸움 시키는 아이들. 뻥튀기 그림은 추억의 시간을 철벅거리게 한다. 뻥이요 하고 고함지르면, 어른도 아이도 귀를 막고 있다가 뻥 소리와 허연 김이 풀썩하고 풍기면서 강냉이 튀밥이 흩어지면 서로 달려들어 주워 먹기도 했다. 추억은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소 외양간에 두 마리 소가 그려져 있다. 저녁 먹고 상현달 아뜩할 때 되새김하는 소의 워낭소리 사이로 까치발하고 날리는 총각들의 휘파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번씩 ‘어메’ 하는 쉰 소 울음이 들리고, 소꼴을 담은 바지게 부챗살 사이로 낫질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소의 정강이는 월식 중이다. 한밤중 내내 달빛을 되새김 하는 소의 여물질. 소고기에는 달빛의 결이 있고 나이테가 있다. 소원쪽지가 촘촘히 걸려있다. 무슨 소원이 저리도 많은지. 어린 시절의 시골을 볼 수 있는 마비정 벽화마을이다.

방귀 뀌는 오빠, 귀를 막는 여동생의 벽화에서 푸후후후 웃음이 터진다. 방귀를 뀌면 코를 막거나 입을 막아야지. 해학이다. 배꼽 웃음이다. 춘하추동 사계절 그림도 있다. 사계절만 알아도 사람 구실한다. 철이 든다란 말이 여기서 왔다. 마비정 황토방 식당이 나타난다. 촌두부를 사먹는다. 돌맷돌에 콩을 갈아서 간수를 넣고 김 서린 촌 두부를 만들면 집집마다 기별이 가고, 촌두부는 마을 가가호호 밥상에 오른다. 그런 미풍양속의 인정이 배인 촌두부 맛이다. 식당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있다. 담 벽에는 시인들의 시도 적혀 있다. 새 고무신을 신어보는 돌이 그림도 있다. 화원장 시오리길, 솔가비 한 짐 팔아 새 고무신 사서 돌아가는 돌이, 혹시 크지 않을까. 짚신 벗고, 가다가 도랑둑에 앉아 신어보고, 고개 마루에 앉아 신어보고, 보물도 그런 보물이 없다.

드디어 삼필봉과 대숲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거북바위와 남근 갓 바위가 나온다. 크고 투박한 수컷 거북바위, 작고 아담한 암컷 거북바위, 이 거북바위에 빌면 수명 장수한다고 장수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오래 사는 것은 사람들의 영원한 소원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거다. 같은 장소에 있는 남근을 닮은 남근 갓 바위, 이 바위를 만지면 자식 없는 부부 자식을 갖는다는 설화가 있다. 마비정 정자가 있고, 길가 전주에 행복, 행복이 쓰여 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산 너머,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천리만리 헤매도 파랑새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행복은 과연 어디에 숨었을까. 우측으로 대나무 터널을 지나 돌아 나간다. 물레방아와 포토존을 거쳐 작은 광장에 선다. SBS 런닝맨, SBS 투데이 촬영지, TBC 매거진 T 스페셜 촬영 및 방영광고 사진도 보인다. 마비정 벽화마을은 그때 그 시절, 추억 어린 그리운 풍경.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옛 시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중한 자원이다. 마비정 작은 책방, 청동으로 조각한 말을 거쳐 나오니 벽화길을 다시 만난다. 옛 학교 그림이 보인다. 의자 들고 벌서기, 난로 위의 도시락, 멍멍 짖는 강아지, 물지게 지기를 보면서 오늘 탐방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시간들임을 깨닫는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소원의 문구가 있다. ‘와 그런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지 마이소, 당신한테는 그런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그 사람이 전부인 걸유.’ 날머리 주차장에 오면서, 왜 우리는 지금 돈 따라 흘러가고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을 왕으로 만들던 소박한 사랑과 인정은 바람 부는 날 밀가루 날리듯이 날려 버렸다. 왜 그날들이 가야만 했을까. 아직도 옛 시골 고향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여기 마비정 마을 뜨뜻한 방구들에 시부저기 이불을 펴고 눕는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주차장 - 벽화길 - 마비정 황토방 식당 - 거북바위, 남근바위 - 대나무 터널 - 물레방아 - 마비정 쉼터 - 농촌체험전시장 - 아지매 묵집 - 주차장

▶문의: 마비정 벽화마을 (053)631 - 9433

▶내비 주소 :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 길 259 - 7

▶주위 볼거리 : 인흥마을, 사문진 나루터, 디아크, 송해공원, 도동서원, 대구과학관, 비슬산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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