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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구례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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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기자기자
  •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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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지나 계곡 숲길 따라 오르니…가지에 걸린 듯한 천은사의 옆모습

천은사 일주문.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자주 입을 다물고 읊었다. 간혹 대뇌가 울릴 만큼 생각하기도 했고 가끔은 가까이 있는 아무 여백에다 쓰기도 했다. 때로는 제멋대로 허락도 없이 내 입안을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하루 밤새 천리 보리밭 푸르러지고.’ 잘 알지 못하는 ‘좌하수’라는 시인의 시 구절이다. 그토록 봄을 기다렸나. 아직은 회색이 압도적인 고속도로에서 구례로 빠져나가자 초록의 들이 펼쳐졌다. 저 낮은 푸름의 구체를 알 수야 없었지만, 내게는 모두 하루 밤새 푸르러진 천리 보리밭이었다.

화엄·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명찰
조선 4대 명필 이광사가 쓴 일주문 현판
물 흐르는 듯한 글씨체, 잦은 화재 멈춰
극락보전 내외부에 거하는 13마리 용
마당 가운데 연유를 알 수 없는 큰바위
명부전 날씬하게 솟은 300년 보리수나무


◆천은사 가는 길

솔숲 끝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 천은사로 간다.
천은사(泉隱寺) 가는 길,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연파, 방광과 같은 이름의 마을을 지난다. 그들의 작은 밭들도 여기저기 푸르다. 거름 냄새가 옅게 풍겨왔고, 검고 부드러운 이랑들은 엎드린 채 눈을 들고서 자신도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을길을 통과해 천은사 삼거리에서 지리산일주도로의 초입인 861번 지방도에 오른다. 넓고 푸른 천은저수지가 시작될 즈음 천은사 매표소가 있다. 일주도로를 막고 절집 입장료를 징수한다. 오래된 논란이다. 나는 천은사가 목적지였으므로, 1천600원을 지불한다. 주차장은 무척 넓다.

쏟아져 내리는 듯한 솔숲을 떠받치듯 일주문이 서있다. 방진처럼 네모난 현판에 ‘지리산 천은사’라 세로로 새겨져 있다. 조선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다. 일주문 너머 왼쪽으로 수홍루(垂虹樓)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숲길이 나있다. 숲으로 든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한동안 천은사의 옆모습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천은사는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명찰로 꼽힌다.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이 있어 감로사(甘露寺)라 했다. 임진왜란 때 절은 불탔다.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말라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은 천은사가 되었다. ‘샘이 숨은 절’이다. 이후 원인 모를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했다. 이때 나타난 이가 원교다. 일주문에 있는 그의 글씨체를 수체(水體)라 한다. 물이 흐르는 듯한 글씨체. 그의 글씨를 일주문에 단 후 다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요한 새벽 일주문에 귀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물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있다.

물소리가 난다. 계곡물소리다. 그러다 문득 숲은 감긴 눈처럼 조용해진다. 작은 동물들이 열심히 살고 있고 나무와 풀은 말할 수 없이 상세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곧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낮은 목책이 길을 돌린다. 천은사 이정표를 따라 계곡에 놓인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계곡 위 푸른 하늘과 한 점 흰 구름이 기적 같다. 이제는 느슨한 내리막길이다. 홍매화가 흐드러진 길가에 차밭이 펼쳐진다. 천은사는 작설차(雀舌茶)의 산지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 차르르 빛나는 이파리들이 싱그럽다. 차밭은 한동안 작고 성글게 이어진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암자도 몇 지난다. 나이가 300살이나 되었다는 대단히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의 넓은 그림자 너머로 천은사의 지붕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사실 초행이었다면 수홍루를 지나쳐 숲으로 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천은사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뒷모습은 처음이다.

◆천은사

응진전 경역. 마당 한가운데 연유를 알 수 없는 바위가 놓여 있다.
첨성각과 매화나무. 첨성각 현판은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극락보전과 첨성각. 극락보전 현판은 일주문 현판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수령 300년 된 천은사의 보리수나무.

시원하게 열린 담장 안으로 관음전, 팔상전, 응진전이 나란하다. 관음전 옆 삼성전과 응진전 옆 이름 없는 승방이 같은 영역을 이룬다. 마당에는 큰 바위 하나가 작은 돌들을 이고 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바위다. 승방 앞 헐벗은 배롱나무가 조급증을 일으킨다. 고개를 돌리자 첨성각 앞에 매화가 함박이다. 첨성각은 극락보전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극락보전은 천은사의 주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건물의 내외부에 용이 많다. 극락보전에 거하는 용이 무려 13마리나 된다. 내부 불단의 왼쪽 기둥에는 하마 조각이 있다. 오른쪽 기둥에는 물고기를 문 수달 조각이 있다. 천은사 마당은 연못, 극락보전은 연못 위에 뜬 연꽃의 형상이라 한다. 그래서 마당에는 석탑이 없고, 극락보전에 사는 하마와 수달은 말간 연못으로 뛰어든다. 극락보전 옆으로 명부전이 이어지고, 선방인 설선당과 회승당, 종각인 운고루, 누각인 보제루가 마당을 에워싸고 있다.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현판은 원교의 글씨다. 보제루와 회승당, 첨성각 등의 글씨는 원교의 제자인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이 썼다. 창암은 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1천 자루의 붓을 닳아 없앴다는 명필가다. 천은사는 이들의 글씨로 유명하다.

명부전과 설선당 사이에 수령 300년 정도 된 보리수나무가 날씬하게 솟아 있다. 그 옆으로 슬쩍 감춰놓은 길이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 선원으로 향한다. 선원은 지금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보제루와 운고루 사이 계단을 내려가면 천왕문이 있는 작은 마당이다. 응진전 앞 바위와 균형을 맞추려는 듯 석등 하나가 서있고 회운당 담장 앞에 매화가 뽀얗다.

천왕문의 높은 계단을 내려가면 맑은 물이 펑펑 쏟아지는 감로천(甘露泉)이 있다. 1천 년 전 감로사의 감로일까. ‘흐렸던 정신이 맑아진다’는 감로사의 물. 그 시절 천은사에는 1천 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이었다. 이후 절의 역사는 많은 부분이 공백이다. 현재 천은사의 대부분은 영조 50년인 1774년 혜암선사(惠庵禪師)가 중창한 모습이라 한다. 계곡에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피안교다. 앞선 다리 위에 수홍루가 올라서있다. ‘무지개가 드리워진다’는 누각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현판은 염재(念齋) 송태회(宋泰會)의 글씨다. 뒤쪽의 다리에 서면 수홍루 홍교의 반영이 한눈에 선명하다. 그것을 보라고, 저것 좀 보라고 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다리 저 다리를 자꾸만 오간다. 피안과 차안을 들락거린다. 지척에 있는 일주문을 쉬이 나서지 못한다. 그러다 멀리 아련한 수평의 제방에 눈길이 닿는다. 저 너머에 천은사 매표소가 있고 천리 보리밭이 있다! 마음이 피안교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광주대구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남원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 순천방향으로 간다. 구례, 화엄사IC로 나간 후 17번국도 구례방면으로 가다 용방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하면 된다. 국도를 타고 조금 더 가다 구례농협미곡종합처리장 앞에서 좌회전해 861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해도 된다. 천은사 입장료는 성인 1천600원, 청소년·학생·군경 700원, 어린이 4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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