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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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35면   |  수정 2019-03-2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문시장의 낮과 밤
‘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전국에서 가장 단순한 삼각만두를 만든 허둘순 할매. 42년간 1지구 육교 발치를 화장 한번 해볼 겨를 없는 얼굴로 지키고 있다.
‘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삼각만두의 뒤를 잇는 ‘나뭇잎형만두’. 지금은 사라진 달서구 명물 잎새만두의 변형 이라고 볼 수 있다.
‘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서문시장 별미김밥으로 알려진 다섯 종류의 ‘김민경 꼬마김밥’.
‘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6년 구력의 25세 국화빵 총각 김신현씨.
‘빨간 양념어묵’‘꼬마김밥’ 주전부리, ‘삼각·나뭇잎만두’별미기행의 대미
30년 이상 강정 등 각종 과자를 수제방식으로 만들고 있는 ‘강고집강정집’의 강영석 사장.

노점칼국수는 국수골목칼국수와 좀 다르다. 노점칼국수는 작업 제약조건이 많아 홍두깨로 직접 반죽을 밀어 면발을 뽑아낼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이면 비닐봉지에 담겨진 1관에 4천원짜리 생면을 배달받아 사용한다. 육수는 노점이나 골목이나 대동소이하다. 노점은 일반 멸치, 국수골목은 상품인 오사리멸치를 사용한다. 그래도 가격은 둘 다 4천원. 육수를 만들 때는 멸치 외에도 마른 다시마, 대파 등을 넣는다. 노점칼국수는 언뜻 안동식 건진국수 스타일 같은데 실은 한번에 뜨겁게 끓여내는 ‘제물국수’ 스타일이다. 국수골목에서는 두 종류의 칼국수가 있다. 뜨거운 것과 미지근한 것이다. 뜨거운 건 면발을 찬물에 씻지 않고 한 타임에 뜨겁게 끓여내는 제물국수 스타일, 그리고 또 하나는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진국수 스타일이다. 이건 삶은 면발을 찬물로 헹궈 졸깃하게 한 뒤 메밀소바처럼 미지근한 멸치육수에 담고 그 위에 채썬 애호박, 빻은 깨, 그리고 다진 소고기를 고명으로 올린다. 간의 농도는 양념장으로 조절하면 된다.

서문칼국수 특징 중 하나는 유달리 깨소금을 푸짐하게 올리는 것과 무한리필로 제공되는 풋고추 인심. 그리고 빠지지 않는 적당한 굵기의 깍두기 한 접시.



노점·골목 두가지 버전 칼국수
뜨겁게 끓여 내주는 제물국수 스타일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진국수
잔뜩 올리는 깨소금·무한리필 풋고추

올드·뉴버전 호떡집 20여곳 경쟁 중
히트한 ‘꽂이순대’ 무즙 육수 ‘무떡볶’
전주한옥마을서 유명한 ‘롤떡갈비’
청년 국화빵, 15가지 어묵 ‘총각오뎅’
돈가스 등 5종류 맛 김민경 꼬마김밥
달지 않은 수제과자 ‘강고집강정집’
42년 한자리‘삼각만두’허둘순 할매
납작만두 진화버전 ‘나뭇잎형손만두’


◆칼국수 짝꿍 호떡

전설의 할매칼국수가 있다면 그 옆에는 전설의 ‘할매호떡’이 있다. 동산상가 바로 남쪽 골목에서 수십년을 호떡 하나만 보고 살았다. 그 할매 이름을 보려고 노점으로 갔지만 닫혀있었다. 할매는 6년전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대를 이었는데 그도 아파서 요즘 시장에 잘 못나오는 모양이다. 몇 번 할매의 호떡을 사먹었다. 할매의 얼굴은 늘 병색이 완연했다. 할매는 직업상 소변을 제때 보지 못했다.

할매호떡은 과도한 견과류를 피한다. 그런데 부산 부천깡통시장에서 대박난 ‘씨앗호떡’이 전국을 강타하자 서문시장 할매호떡도 진화를 거듭한다. 각종 씨앗, 밀가루 대신 찹쌀가루 등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지금 올드버전과 뉴버전의 호떡이 한창 경쟁 중이다. 현재 이 시장의 호떡집은 얼추 20곳이 된다. 홍승윤·박성숙씨 부부가 13년째 지키고 있는 ‘부부찹쌀호떡’은 두 번째 오래된 집이다. 9개월 전 처음으로 이 장터에서 50대 ‘호떡할배’가 된 김남규씨도 1지구 근처에 있다.

◆부산어묵 상륙하다

8년전 ‘미스터어묵’으로 불리는 한 젊은 사내가 서문시장 어묵에 도전장을 낸다. 올해 37세의 핸섬가이 박재석씨. 그의 어머니도 원래 자갈치시장에서 어묵장사를 했다. 부산의 메이저 어묵브랜드인 삼진·환공·고래사어묵이 초대박을 치고 있는 걸 보고 당시 전통시장에선 나름 선방하던 ‘장돌이어묵’을 품었다. 어육살 97.5%의 프리미엄 고퀄리티 어묵시대를 열었다. 장돌이어묵은 30년 역사의 ‘세정식품’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서문시장에서 히트시킨 어묵은 빨간 양념어묵과 꽂이순대다. 1천500원짜리 물어묵도 있다. 여기 대나무 꼬치 끝에는 5가지 색깔로 테이핑을 해놓았다. 가장 매운 건 빨강, 치즈는 노란색이다. 어묵과 어묵 사이 식감을 조정해주기 위해 수제 식혜까지 직접 만들고 있다.

부산어묵과 일합을 겨루는 신개념 부산떡볶이가 있다. 바로 부산에서 올라온 ‘무떡볶’이다. 이성원·이학민 사장이 손을 잡았다. 부천깡통시장에서 10여년 무떡볶이로 인정을 받은 이성원의 삼촌의 동의를 받아 서문시장으로 진출을 했다. 여기선 별도의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무즙을 육수로 활용하는데 거기에 양념을 버무려 사용한다. 서울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있는 정원민씨가 열흘 전부터 불판 앞에 섰다. 이자카야 사장 포스로 무에 힘껏 버무려준다.

부산청년에 이어 전주청년도 서문시장에 상륙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나름 인지도를 가진 ‘정철이네 롤떡갈비’다. 올해 26세의 혈기방장한 배정철 사장은 한달전 여기로 왔다. 그는 원래 디자이너의 길을 걷다가 외식업으로 터닝했다. 과일 등 20여가지 재료를 만들 때 인공적인 요소를 일절 배제하고 오직 국내산 수제만 고집한다.

그 청년을 보면 동쪽1문 근처에서 모친과 국화빵을 파는 김신현씨가 생각난다. 그 옆에는 올해 15년차의 최동진씨가 모친과 함께 15가지 어묵을 ‘총각오뎅’이란 상호로 팔고 있다.

이들과 잘 어우러지는 김밥이 있는데 그게 ‘김민경 꼬마김밥’. 3년 구력으로 현재 돈가스, 불고기, 야채, 스팸, 수제햄 등 5종류를 매운·중간·순한맛으로 나눠 판다. 근처에 식구가 다 합심해 운영하는 ‘선비꼬마김밥’도 경쟁관계.

이 밖에 추어탕을 비닐봉투에 담아 5천원에 파는 두 명의 아지매도 눈길을 끈다. 바로 사공자이와 서무순씨. 서무순씨는 1지구 근처를 38년째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민물고기를 팔았다. 고령군 개포나루터 근처 낙동강에서 그물로 온갖 민물고기를 잡아 서문시장에서 팔았다. 오후 7시30분 서부정류장에서 떠나는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언젠가부터 민물고기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5년전부터 추어탕과 미꾸라지만 판다.

닭전골목에는 이젠 추락해버린 대만카스텔라를 새롭게 살려낸 ‘서문카스테라’, 소의 속 등껍데기의 일종인 소구레, 그리고 그릇에 담아 파는 메밀묵도 여기에서만 살 수 있다.

◆강정과자 아저씨

근처에 ‘강고집강정집’이 있다. 올해 32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호집은 아진상가 골목으로 진출했다. 강영석 사장은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나를 위해 샘플로 내놓은 과자를 일일이 맛보라면서 꺼내준다. 여느 과자는 당분이 과도했는데 여긴 거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늘 입에 안 들러붙고 딱딱하지도 않고 달지 않는 과자시대를 열고 싶어했다. 전국의 야시장을 떠돌다가 이거다 싶어 시작한 게 강정가게. 6~8월만 제외하고 연중무휴 과자를 수제로 만들어낸다. 단호박칩, 자색고구마, 연근칩, 고구마스틱, 미니 단호박쌀뻥튀기, 쌀강정, 오란다 등이 인기다. 한쪽에선 아몬드, 캐슈넛, 땅콩을 최적의 온도로 볶고 있다. 강정을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작업대가 구석자리에 놓여 있다.

강정아저씨와 궁합이 맞는 4전5기의 빵아저씨가 있다. 주차타워 서쪽 도로변에 자리잡은 ‘찜케이크집’. 밀가루 전분이 과도하게 들어가 식감이 별로인 마이너급 옥수수술빵에 늘 실망해 자신이 나섰다. 그렇게 해서 쌀로 만든 신개념 찜케이크를 개발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섬유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김화숙 사장(61). 전국 5일장을 돌면서 옷장사를 했다가 망하고 달성군 옥포 용연사 근처에서 삼겹살집을 했지만 모두 접어야만 했다. 빈손으로 2017년 10월에 시작한 게 찜케이크다. 현재 울산 2곳, 청송 주왕산 시설지구 등에 빵을 주고 있다. 3월부터 10월 말까지만 팔고 동절기에는 붕어·국화빵을 판다. 그는 땅콩 들어간 붕어빵으로 적잖은 시장상인을 단골로 만들어버렸다. 돈을 더 많이 벌면 25인승 버스를 집시카로 튜닝해 전국을 돌며 장사하고 싶단다.

◆서문시장 삼각만두와 나뭇잎만두

서문시장 별미기행의 대미는 만두가 장식한다. 서문시장에는 삼대 만두가 있다. 물론 기본은 미성당, 교동시장, 남문시장 등에서 히트를 친 60여년 역사의 ‘납작만두’. 장터 보리밥, 분식집 등에선 이걸 다 취급한다. 하지만 납작만두를 더욱 진화시킨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서문시장을 ‘삼각만두 1번지’로 만든 허둘순 할매. 그리고 달서구의 명물로 불렸던 ‘잎새만두’를 극복한 ‘나뭇잎형손만두시대’를 연 양창원씨(65)가 있다. 박근혜, 김부겸, 오세훈, 김문수 등 많은 정치인이 먹고 갔다. 커튼장사를 하다가 만두와 어묵을 팔기 시작한 그는 교동에서 시작해 대구백화점을 찍고 서문시장에서 꽃피운 콩나물을 가미한 ‘콩나물양념어묵찜시대’를 열었다.

허씨 할매는 서문시장 치안센터 뒤편 1지구 육교 발치에서 42년을 버텨왔다. 77년 할매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3남매 학비를 조달하는 게 어려울 정도도 가계가 어려웠다. 서부시장(비산2동)에서 중고 리어카를 하나 구입해 왔다. 거기서 어묵 장사를 하다가 현재 장소로 옮긴다. 해수욕 한번 못가고 극장 구경 한번 못했다. 화장 한번 못해온 인생이다. 하지만 방송인 박철씨가 서문시장 명물 삼각만두를 인터뷰하기 위해 SBS 제작진과 여길 찾아오는 바람에 팔자가 펴졌다. 옆에 경쟁자인 대신·서문·명국이네도 삼각만두를 판다.

여기는 떡볶이·김밥·순대도 없다. 오직 삼각만두 하나뿐이다. 가로 1.8m 세로 1m 정도 되는 리어카에는 드럼통 뚜껑 같은 지름 75㎝ 정도 되는 무쇠 프라이팬이 더운 열기를 뿜어낸다.

당면을 너무 오래 삶으면 탱탱 불어서 식감이 사라진다. 당면은 물이 끓으면 넣고 15분 남짓 삶고 안동 건진국수처럼 삶은 뒤 찬물에 넣고 탱글탱글하게 만든다.

서문시장 밤과 낮을 지켜주는 이들 먹거리에는 명품음식이 죽어도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 있다. 그건 바로 한번씩 절벽으로 내몰린 경험이 있는 장터사람들만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질박하고 정겨운 삶의 지문이 고스란히 찍혀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싫은가. 당장 시장 속으로 자맥질해 보시라. 물음표(?)가 금세 ‘느낌표(!)’로 피어날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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