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외로운 늑대

  • 박재일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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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23면   |  수정 2019-03-22

또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lone wolf)’가 총을 쐈다. 무려 50명이 죽고 같은 수의 사람이 다쳤다. 지난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다. 이 도시에서 근 20년간 이민가 살았던 친구는 한차례 지진 빼고는 정말 좋은 도시였다고 했다. 범죄 청정의 평화롭던 곳이란다. 그런 도시에 왜 인간 늑대가 출몰하는가.

외로운 늑대는 나홀로 테러리스트다. 조직화된 집단의 테러가 아니다. 특정 이념이나 왜곡된 신념의 산물인 것은 동일하지만, 개인적으로 증폭된 증오에다 자발적 행동이라 돌출적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의 이탈자, 웅크린 이들에게서 싹이 튼다. 정신질환의 결과물인 동시에 사회적 병리의 징후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미국에 만연해 있다. 사람 사냥이 끊이지 않는다. 2007년 한국계 학생 조승희의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는 우리에게도 충격을 줬다. 32명이 죽었다.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반감에다 이민 1.5세대의 우울증과 좌절감이 촉발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2016년에는 플로리다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2012년 코네티컷주 초등학교에서 학생·교직원 27명을 죽인 자폐증 환자의 총격, 2009년 텍사스 미군기지내 무슬림 현역군인의 총기 테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뉴질랜드 테러범 브렌턴 태런트는 호주출신의 멀쩡한 백인 청년(28)으로 보이지만 뒤틀린 역사인식에다 인종혐오로 세뇌됐다. 이슬람이 유럽을 공격하고, 이슬람 이민자들이 뉴질랜드 땅을 더럽히고 있다고 믿었다. 한국·중국처럼 단일 민족사회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스스로 영웅인 양 범행전 무려 73쪽의 온라인 선언문도 발표했다. 2011년 노르웨이 노동당 캠프 총기난사로 77명을 죽게 한 브레이비크에 감명받았다고 밝혔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그가 범행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해 버렸다는 대목이다.

늘상 반복되나 숱한 과제를 던진다. 뉴질랜드는 미국처럼 새삼 총기 소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모양이다. 한국에서 고층 아파트가 쏟아지면서 투신자살이 많듯이,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총기는 테러의 촉발요인임이 분명하다. 다인종 사회내 인종간 갈등, 초현대사회의 부적응자와 인간소외, 양극화, 골수 이념에 경도된 자들, 마음대로 죽이고 죽는 흉내를 내는 사이버 세상의 혼돈. 이 모든 것들이 이제 특정국가, 특정지역만의 고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박재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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