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개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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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22면   |  수정 2019-05-01
문학시설 적은 대구에 경사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대구문화 의식 수준 드러내
시민도 뿌듯하게 생각할 듯
중구 넘어서 한국의 것으로…
20190322
문학박사

2019년 봄이 오는 길목에 대구 문학계에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난 3월6일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개관이 그것이다. 2008년 8월12일 개방한 이상화 고택, 2014년 10월30일 개관한 대구문학관, 2016년 음력 4월4일(이육사 시인의 생일) 개관한 ‘264 작은 문학관’이 대구문학 관련 시설의 전부였는데 여기에 문학 시설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중구청이 운영하게 될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생긴 것은 문학과 관련된 시설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대구에 큰 경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개관은 매우 특이한 콘셉트로 꾸며진 문학 시설이다. 지금 전국에 적지 않게 개관되어 있는 문학관은 대부분 문인의 이름을 건 문학관이다. 따라서 문인 중심이다. 지자체가 만든 지역 문학관도 그 지역 출신 작가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개관된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소설가 김원일 문학관이 아닌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작품관이다.

작품관이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어서 오히려 문학 시설답다. 만약 이 작품관을 넓은 면적에 거창하고 화려하게 꾸몄다면 작품 ‘마당 깊은 집’이 가진 의미를 크게 벗어나고 말았을 것이다. 깊이 따져보아야 할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크게만 짓고 보자는 정치적 안목에서 벗어나 다행스럽다. 그래서 이 작품관은 앞으로 대구문화 의식의 수준을 드러내는 시설이 될 것이다.

작품은 우찬제가 해설에서 쓴 마지막 문장, “김원일 문학의 핵심적 기저 구조를 담고 있는 ‘마당 깊은 집’은 난세의 성장소설”이라고 한 것보다 더 적확한 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난세는 “3년 동안의 전쟁이 멈춘 휴전 이듬해였으니, 1954년 4월 하순이었다”에서 시작되어 1년 남짓 된다. 전쟁이 남긴 상처가 가난이라는 현실로 다가섰는데, 그 가난을 벗어나려는, 아니 생명을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처절하게 펼치는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그 다양함은 오로지 늘 배가 고픈 사람들로 집약될 수 있다.

“니는 인자 애비 없는 이 집안의 장자다. 가난하다는 기 무슨 죈지, 그 하나 이유로 이 세상이 그런 사람한테 얼매나 야박하게 대하는지 니도 알제? 난리를 겪으며 배를 철철 굶을 때, 니가 아무리 어렸기로서니 두 눈으로 가난 설움이 어떤 긴 줄 똑똑히 봤을끼다. 오직 성한 몸둥이뿐인 사람이 이 세상 파도를 이기고 살라카모 남보다 갑절은 더 노력해야 겨우 입에 풀칠한다.” 배고픈 장남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타이르는 말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면 큰 죄를 지은 것보다 더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것이 전후의 대구였다. 소설 속에서 대구로 한정되어 있지만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을 것이고, 우리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은 모든 나라가 이 같았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이 다음에 돈 잘 버는 그런 세월이 오면 여름철에 아이스케키를 한 자리에서 오십 개쯤 먹어 뱃속이 얼어붙게 만들어볼테다고 결심했을 만큼”의 그런 세월이었다.

이런 소설의 작품관이 생겼으니 대구의 자랑거리가 되고, 시민들이 뿌듯하게 생각해도 좋을 일이다. 이렇게 의미있는 개관식에 김원일과 가까운 경향 각지 원로 문인들, 지역 문인을 대표하는 문협회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등 많은 문인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 중 누구도 작품관 개관을 축하한다는 말을 개관식에서 공식적으로 하지 못했다. 작품관을 누구보다 사랑하여 자주 찾아갈 사람이고 많이 홍보할 사람인데. 대구의 것이 되고, 한국의 것이 되어야 할 귀한 작품관을 중구 것으로만 만드는 개관식. 그래서 아쉬움이 있었다.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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