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출, 그 낙관과 비관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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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1 00:00  |  수정 2019-03-21
20190321

 2018년 가계 빚은 경제성장 속도를 추월하면서 다시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 지난 2월24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가계부채는 1천534조6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5.8%가 더 증가한 결과를 보였다. 가구 수의 증가추세보다 가계신용이 더 가파르게 늘면서 가구당 부채는 7천77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시 한 번 가계부채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의 돈을 빌리는 대출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우리의 인생경제에서 대출이라는 것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인가? 내가 보아온 사람 중에는 그 흔한 신용카드도 한 장 없이 남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오늘날의 이 엄한 금융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대출이라는 것이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출은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나로부터 돈을 빌리는 행위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출관행이 있었는데, 특히 장리(長利)벼라는 것은 춘궁기에 양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가을에 추수하면 갚기로 하고 빌리는 벼를 일컬었다. 장리란 원칙적으로 연 5할(50%)의 이자를 의미하였으며, 춘궁기라면 4∼5월경이고 수확기는 10월경이니, 연리인 장리벼는 1년이 아닌 6~7개월간에 50%의 높은 이자율로 빌리는 셈이 된다. 특히 벼를 빌리는 사람은 봄에 벼를 빌릴 때의 가격과 추수기의 가격이 차이가 남에 따라 이중의 부담을 겪었다. 즉, 봄에 1가마니를 빌리더라도 이자(50%) 반가마니를 포함하여 추수기에 1.5가마니를 갚게 되는 것이 아니라 봄에 비해 추수기의 쌀 가격이 떨어짐에 따라 총 2~3가마니에 해당하는 곡식을 갚아야 하는 이중 착취를 당했다. 장리벼는 6~7개월 후 미래의 2~3가마니의 양곡을 미리 1가마니의 곡식으로 바꿔서 먹는 셈인 것이다. 대출에 있어서 미래의 상환계획이 필요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대출이라는 것은 미래에 내가 누릴 행복을 현재 필요한 생활과 맞바꾸는 것으로 그만큼 미래에 대한 행복을 희생한 것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좀 더 잘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 역시 분명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이 없다면 살아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부문에서는 좀 더 조심스럽게 비관적, 혹은 보수적이어야 할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건강문제가 그렇고, 대출에 대한 태도 역시 보수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부분이다. 대출을 일으키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자와 원금 등 대출상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게 된다. 그 전까지 없었던 추가적인 상환자금이 필요하게 되며 이를 위해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금융사회에서 대출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출 없이 월급만을 꼬박 모아서 집을 사려면 평생 죽을 때까지 모아야 한다. 대출을 받아서 사업성이 있는 투자를 통해 이자를 갚고도 이윤이 남는다면 대출은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대출은 주택자금이나 사업자금과 같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반면에 여행자금, 유흥자금과 같은 소비성자금은 대출받지 말아야 하는 분야다.
 

오늘과 같은 첨단 금융사회에서 너무나 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방탕하게 대출을 받아서 현재의 나만 생각하고 미래의 나를 희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너무나 나의 미래를 비관해서 무조건 대출을 기피함으로써 오늘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는 잘못 역시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슬기롭게 대출을 이용하고 대출이 미래의 나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잘 알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을 잘 다스리는 주인이 되자.

 박 정 철  (농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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