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시간의 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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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0 08:00  |  수정 2019-03-20 08:25  |  발행일 2019-03-2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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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을 마감한 타일의 크기를 보고 건물이 지어진 시기를 맞출 수 있을까.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만 수입이 금지되고 유통이 되지 않는다든가, 인건비나 기술적 이유로 한때 많이 사용되던 타일이 멸종되면서 이에 따른 건물의 연대는 대충 구분된다. 타일의 사이즈에서 시간의 흐름을 발견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스케일의 변화는 단지 타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건물이 높아지고 길도 넓어진다. 심지어 집앞 골목도 도로(명)로 된다. ‘달구벌대로’ 같은 주소를 보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주소로 묶이는 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새삼 ‘스케일’에 대한 질문을 꺼낸 건 얼마 전 진행한 ‘대명동 지오스피릿’이라는 아카이브 프로젝트 때문이다. 하루 동안 시민들이 대명동 일대를 걸으며 직접 땅의 역사를 찾고 탐사하며 기록하던 그날, 나는 ‘타임스케일’이라는 주제로 8명 탐사대원들과 대명3동 일대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구릉지였고 사람이 그리 많이 살던 곳은 아니었다. 1960~70년대 주거지역으로 개발된 이 일대는 수십 년간 조금씩 시간의 형태들을 그려왔다. 우리는 먼저 재개발을 앞두고 구역 전체에 가림막이 쳐진 대구고 근처로 향했다. 사람만 사라진, 시선을 차단하는 가림막 너머의 동네를 각자 걸으며 탐색하고 넓은 도로 건너, 맞은편에 자리한 동네로 향했다.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지만 이제 운명을 달리하는 이곳에서 각자 주제를 잡고 조사하고 기록하며 나름의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다시 모인 우리는 단순히 옛것이 좋거나 오래된 것이 좋다는 걸 이야기하진 않았다. 흔히 하는 말로 휴먼스케일, 즉 인간의 규모에서 감각되는 도시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옥, 다세대 건물과 원룸 등 주택의 시대별 유형의 특징, 골목과 담장 스케일의 상관관계, 평상이나 화단, 의자, 심지어 계단까지 인간의 눈높이와 시속 2㎞의 속도감 내에서 포착되는 다양한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그곳에서 모처럼 신기한 풍경을 만났다. 벼랑 위에 지어진 듯 높은 곳에 자리한 판잣집과 그 아래 파식애의 흔적을 지닌 암벽이었다. 이 지역에는 이미 사라진 것과 남아있는 것, 그리고 사라질 것들이 그 장면 속에 적절하게 녹아있었다.

음악에서의 스케일은 음정의 배열, 즉 음계를 뜻한다고 한다. 도시에서 발견하는 스케일이 일종의 음계라고 한다면 단조로운 반복을 벗어나 풍부한 리듬과 음색을 연주할 가능성으로 남겨놓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한 시대만 옳을 리 없다. 다만 어느 시대든 이 도시에 얼마씩은 남아있길 바란다. 또 다른 탐사자들이 또 다른 리듬과 멜로디로 각자 도시의 윤곽을 드러낼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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