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꽃집에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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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5 08:05  |  수정 2019-03-15 08:05  |  발행일 2019-03-15 제16면
[문화산책] 꽃집에 없는 꽃
김종필<시인>

산책로가 절경이라는 말을 듣고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개비리길 노을을 보려고, 늦은 오후에 서둘러 나섰지만 이미 해가 서산을 넘어 강의 일몰을 보지 못했으나 강을 따라 굽이굽이 걷는 저물녘 산책길 그림은 어느 자리에서 보아도 산수화처럼 아름다웠다. ‘비리’는 벼랑의 방언으로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걷는 벼랑길인데, 강물에 잠기는 노을을 보러 꼭, 다시 오리라는 마음으로 돌아오다 외길에 멈춘 경운기와 마주쳤다. 부자 간으로 보이는 분들이 무엇인가 길바닥에 떨어진 것을 빠른 손놀림으로 상자에 담고 있었는데 씨감자 쪽이었다. 쏟아진 양이 너무 많아서 낯선 차가 다가가자 매우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어설피 도와주려고 나서기보다는 길이 열리길 기다렸는데 비켜갈 만큼만 주워 담고는 지나가라는 손짓을 하여 배려에 고맙다는 목례를 하였다.

정말 이런 봄은 없었다고 한다. 경칩에 깊은 겨울잠을 깬 청개구리가 처음 대하는 미세먼지에 너무 놀라서 잠 속으로 돌아갔다는 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농부가 밭을 갈아 온갖 씨앗을 파종해야 할 적기다. 촉촉한 비, 살가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의 보살핌에 새순이 올라와 줄기가 되고, 잎을 띄우고, 꽃을 피우며, 수확을 하는 과정이 농부는 어느 때보다 흥겨울 것이다. 그처럼 농부의 정성과 하늘의 도움으로 짓는 농사라 하지감자가 제일 맛있다고 했으니, 따뜻한 기후로 파종이 빠른 먼 남녘 제주에는 곧 감자꽃을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어린 시절에 늦은 감자 이삭을 캐려고 줄기 더미를 헤쳤다가 똬리를 튼 뱀을 보고 놀라서 운 적이 있는데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은 하얀 감자꽃을 밭에서 직접 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뭇 사람들은 꽃집에 있는 꽃들만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여긴다. 아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아름답다. 벌써 거리에서 노란 프리지어를 가슴에 안은 모습을 자주 보는데 어느 꽃집의 철을 가리지 않는 수많은 꽃 중에 하나일 뿐이다. 프리지어를 닮은 듯한 유채꽃이 강섶과 들에 만발할 날이 머지 않았다. 유채가 가면 메밀꽃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자주 감자꽃과 고구마꽃이 피고, 노란 땅콩꽃은 귀엽고 첫물이 달다는 정구지꽃은 안개꽃처럼 풍성하다. 가지꽃은 은은하고 하얀 고추꽃은 별을 닮았고 더덕꽃은 아주 작은 종처럼 생겼지만 이 아름다운 꽃들은 꽃집에 없다. 열거한 꽃들의 잎과 줄기, 열매와 뿌리는 우리가 즐겨 먹는 식재료다. 이 중에는 사는 동안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들다는 꽃이 있고,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는 꽃말도 있다. 삶아 먹고, 무쳐 먹고, 날로 먹으면 말 그대로 보약이다.

감자꽃이 필 무렵에는 식구들과 들판으로 가보자. 꽃집에 없는 꽃, 입이 즐거운 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자. 농부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캐고 따는 체험으로 수확의 기쁨도 누려 보자.김종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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