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빈곤과 성장, 그리고 돌봄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3-14 07:59  |  수정 2019-03-14 07:59  |  발행일 2019-03-14 제21면
아동기 가난·불화 등 불우한 환경
성인 된 후 건강에 극도의 악영향
엄마의 보살핌만이 강력한 보호막
[송유미의 가족 INSIDE] 빈곤과 성장, 그리고 돌봄

가난이 범죄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생계형 절도나 강도 등은 많았지만, 최근에는 무동기범죄나 연쇄살인마 등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무동기범죄는 범죄자의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고 범죄자와 피해자 간에 특정한 이해관계가 없는 불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말하는데, 흔히 양육자와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심리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저지른다. 연쇄 살인마도 그가 양육된 환경을 살펴보면,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빈곤한 가정, 즉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란 이력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칼럼은 빈곤과 인간의 성장, 그리고 부모의 돌봄에 대한 연구를 살펴본다. 미국 캘리포니아 종합건강검진기관에 근무하는 빈센트 펠리티는 불우아동기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연구를 통해 아동기의 불우한 경험과 성인 건강과의 관계를 밝혀냈다. 그는 1995년부터 검진하러 온 사람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고 불우했던 아동기의 10가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10가지 경험에는 신체적 또는 성적 가혹행위,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방치,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감옥에 가 있는 가족, 알코올 중독자인 가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2년 동안 1만7천명의 설문지를 회수했고, 응답자들은 백인과 대졸자가 각각 75%, 평균연령이 57세로 상위 중산층이었다.

펠리티는 10가지 경험 가운데 한 가지 불행한 경험에 대해 1점씩을 주는 방법으로 ACE 점수를 매겼고, 성인이 된 후의 중독성 행위나 만성질환 등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상관관계가 놀랄 만큼 높았다. ACE 점수가 높을수록 비만, 우울, 때 이른 성경험, 흡연 경력을 비롯해 간질환, 당뇨병, 폐암 등에 이르기까지 건강이 훨씬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들이 자존감의 저하를 가져오거나 존재가치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믿어왔고, 그런 감정들이 중독이나 우울증, 심지어는 자살까지도 야기할 수 있으며 과도한 음주와 과식, 흡연 따위로 만성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봤다. 그런데 펠리티는 ACE연구에서 어릴 때의 불행한 경험이 성인이 된 후의 건강에 극도로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소아과 의사 버크 해리스는 어릴 때의 트라우마와 조절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환자들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녀는 펠리티의 ACE 설문지를 수정해서 700여명의 학생들에게 사용했더니, ACE 점수와 학교 내 문제점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ACE 점수가 제로인 학생 가운데 3%만이 학습이나 행동 상에 문제가 있었지만, ACE 점수가 4 이상인 학생은 51%나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학자들은 버크 해리스의 연구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초기 스트레스 때문에 뇌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부위는 전전두엽으로, 감정과 인지 양쪽에서 모든 종류의 자기조절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부위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대개 갑작스러운 충동이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쉽게 폭발해 버린다.

발달심리학자 클랜시 블레어는 1천200명의 신생아들을 출생시점부터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반응을 1년에 한 번씩 측정했다. 그 결과 가족 내 불화나 환경적 요인이 막대한 영향을 주지만, 그 영향은 엄마가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살갑게 반응해주지 않았을 때만 그렇다는 사실을 밝혔다. 엄마의 양육의 질이 높으면, 불우한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피해를 상쇄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약하면 아이의 초기 불우한 환경이 아이의 성장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강력한 보살핌이 있다면 초기 불우한 환경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 songyoume@dcu.ac.kr>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