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유림,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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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4 07:54  |  수정 2019-03-14 07:54  |  발행일 2019-03-14 제20면
[문화산책] 유림, 그들만의 리그

지난 11일 월요일, 전국 200여곳의 향교에서 일제히 석전대제가 봉행됐다. 이를 기점으로 앞으로 10일 간격으로 두달간 전국의 1천여개소에 달하는 서원과 사우에서도 향사가 시작된다. 음력 2~3월에 행해지는 유림사회의 이러한 연례행사는 같은 해 음력 8~9월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고로 석전은 성균관과 향교에 제향된 공자를 비롯한 유교성현을 기리는 의식이요, 향사는 서원 등에 제향된 훌륭한 인물을 기리는 의식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석전과 향사가 끝나면 이번에는 계모임이 시작된다. 유림사회의 계모임은 일반적인 계모임과는 좀 다르다. 대구지역의 몇몇 유림계를 한 번 예로 들어보자. 대구 수성구 시지에는 무려 600년 내력을 지닌 강선계가 있다. 이는 여말선초 시기 시지에 세거한 밀양박씨, 아산장씨, 옥산전씨 세 문중의 계모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동구 효목동에는 400년 역사의 대명14현 계모임이 있다. 한 날 한 시에 숭정처사를 자처하며 팔공산자락으로 집단이주를 한 14인의 후손이 결성한 계로, 이 모임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달서구 강창에는 이락서당계가 있다. 200여년 전 이락서당을 건립한 9문중 11마을 30인의 후손이 중심이 된 계모임이다. 또 달성군 도동서원에는 교부계가 있다. 김굉필 선생 생전에 만들어진 계모임으로 그 역사가 무려 539년이나 된다.

한편 지금은 그 명맥이 끊겼지만 1913년에 결성된 북구 도남동의 유화당계도 있다. 유화당계는 계원의 수만 전국에 걸쳐 무려 885명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초대형 유림계다. 이처럼 유림계는 그 역사가 짧게는 100년, 길게는 600년에 이른다. 성격 역시 문중계, 서당계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는 21세기 최첨단 정보통신사회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수백년 내력의 전통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장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유림문화처럼 말이다. 필자는 ‘유림, 그들만의 리그’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이 표현은 부정과 긍정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는 유림사회가 자신들의 문화를 동시대인들과 함께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긍정적인 의미는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꿋꿋이 지키고 이어간다는 점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유림문화의 전형이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중국조차도 공자의 제사인 석전대제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현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고 있는 유림이 고마울 따름이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석전대제도, 향사도, 유림계도 모두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은석 (대구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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