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얼굴없는 보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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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3 08:01  |  수정 2019-03-13 08:01  |  발행일 2019-03-13 제23면
[문화산책] 얼굴없는 보행자들

한때 산책길에 마주치는 공포의 대상이 있었다. 그들의 주 서식지는 신천변 산책로였고, 주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 대낮에 출몰이 잦았다. 덥지도 않은지, 어쩌면 땀을 내기 위한 수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얼굴 전체를 꽁꽁 싸맨 그들은 서둘러 나를 지나갔다. 날이 추워지면서 그들은 행방을 감추었고, 안심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은 봄에도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가 상당히 늘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그들은 바로 얼굴 없는 보행자들이다.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가렸던 그들은, 이제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가린다. 얼마나 가려야 안심할는지 헤아릴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차단’이다. 다름 아닌 얼굴의 차단. 얼굴은 타자지향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얼굴의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통로이기에,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얼굴’을 가린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봄은 더 이상 나른한 고양이도 아니고, 새싹이 움트는 희망의 상징도 아니다. 미세먼지에 주의하라는 긴급재난문자와 함께 봄이 온다. 이제 봄은 위험한 외출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기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공기청정기는 필수가전이 되어가고 있다. 가성비 좋은 공기청정기가 인기이고, 그 와중에 일명 ‘청담동 공기청정기’라 불리는 고가의 기계도 화제다. 돈으로 사는 비싸고 좋은 공기가 상품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도 공기청정기가 한 대 돌아간다. 새집 증후군 때문에 들였는데, 봄을 맞이하여 한껏 ‘열일’ 중이다. 미세한 전자파 소리를 내뿜으며 돌아가는 저 기계 덕분에 열 평 남짓의 이 공간은 조금 깨끗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저 기계 하나가 늘면서 잡아먹는 전력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이만큼의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발전소 가동량을 늘릴 테고,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는 미세먼지의 알갱이가 될 테니까.

한편, 이 환경에 오롯이 노출되는 사람들이 있다. 건설현장에, 공장에, 길거리에 얼마든지 있다. 저기 들려오는 울음소리의 주인인 새들과 그들이 머무는 나무도 아무런 차단장치 없이 봄을 맞는다. 결국 우리는 오늘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갱신하며 살아간다. 좀 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하고 밀봉하며, 그 안에서 안전하다 위안하는 사이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단순히 맑은 공기일까. 우린 무엇을 피하고 있는 걸까. 우리 자신을 피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마주해야 할 바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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