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시대, 대구경북 프로젝트 .10] 지자체 교류협력 방향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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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2   |  발행일 2019-03-12 제8면   |  수정 2019-03-20
“지자체가 대북교류 주체 돼야 한반도 新경제구상 시너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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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 근로자들이 단체 줄넘기 경기를 하고 있다.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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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 근로자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은 남북관계, 정권의 의지 등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 남북경협 30년, 지자체 남북교류협력 2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자체는 대부분 종속적 위치에서 교류협력을 진행했다. 북한과의 협력관계 또한 인도적 지원, 일회성 방문·초청 등 일시적 접촉으로 끝난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판문점선언 이후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환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사실상 남북평화 공존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지속가능한 교류협력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마인드의 대북교류협력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99년 제주 감귤 북송으로 물꼬
남북 갈등 국면에 명맥 유지만

현재 지자체 대북접촉 제약 많아
법률상으론 독자추진할수 없어
통일부 제의→남북연락사무소등
여러과정 거쳐 의사전달 안되자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요구 커
아직까지는 국회서 논의 단계
빨리 문제 해결돼야 교류 활성화

“북한과 본격적인 협력 시작되면
과열양상·중복 사업도 조정해야
모든 지자체 참여 협의기구 필요”


◆20년 지자체 교류역사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은 1999년 제주도 감귤 100t을 북한으로 보낸 것이 첫 시작이다. 당시 과잉생산된 감귤을 북한에 지원하면서 지자체의 대북교류 물꼬가 텄다. 북한 주민에게는 감귤을 맛보게 하고 국내 감귤농가에는 가격 안정 효과를 가져다 준 윈윈 사례다. 이 사업은 10년간 지속됐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강원도가 반민반관 남북교류협력 전담기구로 남북강원도협력협회를 발족하고 북한쪽 강원도를 방문했다. 이들은 북한 강원도 인민위원회와 교류협력 MOU를 체결했다. 협력 내용은 산림 병충해 공동 방제, 농업지원 사업, 사회문화 교류사업 등이다. 2003년에는 경기도가 북한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과 협약을 체결하고 말라리아 공동방역 사업, 산림녹화 사업 등을 진행했다. 이처럼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지자체 남북교류는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김대중정부에서는 관련 법령상 지자체가 대북지원 사업자의 주체로 돼 있었으나 노무현정부 들어서는 관련 지침을 개정해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남북교류협력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규정을 바꿨다.

이후 2003년 5월과 8월에는 부산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2004년에는 북한 룡천역 폭발사고 피해 지원이 계기가 돼 북한교류가 전국 지자체로 확대됐다. 경남도의 황해북도 농촌개발사업, 경기도의 농촌현대화사업, 서울시의 의료장비 지원, 부산시의 평양 항생제공장 지원사업 등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때부터는 지자체의 대북교류가 사실상 단절되고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류의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 많은 지자체 대북교류

지자체 대북교류협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군사적 요인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미관계가 갈등 국면에 접어들면 대북교류는 중단되는 패턴을 보여 왔다. 남북한 정부 간 갈등국면이 조성돼도 교류는 진행되기 힘들었다. 특히 서해교전과 같은 직접적인 무력충돌은 상당 기간 남북교류협력의 제약 요인이 됐다.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지자체의 대북교류가 사실상 금지됐다.

제도적인 한계도 있다. 현행 법률상 지자체는 남북교류협력의 법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초기에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추진하도록 했으나 중복되거나 무분별한 교류를 억제하고 효율적인 교류를 진행한다는 명분으로 중앙정부(통일부)의 조정능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각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대신 대북지원 민간단체와 위탁·협력 관계를 맺어 대북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단체는 지자체 자금을 활용해 대북교류를 내실있게 할 수 있었고, 지자체는 대북지원단체를 통해 대북교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후 교류확대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대북교류의 주체가 되지 못하도록 한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지난해 말까지 개정 방침을 세웠지만 아직 국회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정부는 지자체의 대북교류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제도적 문제점은 여전하다. 현재 지자체가 대북접촉이나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통일부에 제의→통일부의 허가 결정→남북연락사무소(개성) 이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통일부 차원에서 정책효과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지자체와 정부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만큼 지자체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운 절차일 수밖에 없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하면 시일이 지체되고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단점이 있어 지자체가 비공식라인 등 비정상적 방법으로 북한 접촉을 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한다.

◆문재인정부서 달라진 환경

지난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는 사실상 평화공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 대북제재가 해제되는 국면이 오면 대북교류는 지금의 중앙정부 주도에서 민간기업과 지자체가 리드하는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는 대북교류도 지자체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소위 분권형 통일정책으로서 관련법을 개정해 대북교류 권한 상당 부분을 지자체에 위임하겠다고 표명했다. 과거 중앙정부의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본 교류 차원을 넘어 지자체의 분권 확대와 비정치적인 남북교류협력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문재인정부가 발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지자체의 교류협력 범위와 내용이 과거와는 다른 프레임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환동해축과 환황해축은 남쪽 지자체와 북쪽 지자체·경제특구와 맞물릴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인도적 지원이나 문화·체육행사 교류왕래와는 다른, 심도 있는 교류협력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또한 사실상 남쪽 지자체를 겨냥한 지방경제특구를 조성해 놓고 있어 남북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경우 교류협력이 상당히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상호 ‘윈윈 모델’ 개발 숙제

지자체의 원활한 남북교류를 위해서는 우선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의 주체가 되지 못하도록 규정한 남북교류협력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이로 인해 지자체의 체육·문화 교류사업이 상당히 장애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지자체가 곧바로 북측과 접촉하지 못한다. 지자체가 통일부에 사업 제의를 하면 장·차관이 결재 후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로 이관돼 북한과 접촉이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실제 접촉이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성의 있는 접촉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자체로서는 절실한 문제이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업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난해 말 해결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빨리 이 문제가 해결돼야 지자체 차원에서 제대로 된 대북교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다음은 소통·조정문제다. 남북교류협력방안으로 정부에서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북한에서는 경제특구를 지정해 둔 상태다. 과거와 달리 대규모 남북경협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이나 북한 경제특구 지정 등 남북 경협구상 모두가 현재는 큰 틀의 밑그림만 그려진 상태다. 남북 당국자의 전체적인 조정이 필요하고, 그다음 단계로 지자체 간 협력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연계가 절실하고, 특정 지자체에만 관련된 사업이 아닌 만큼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그리고 지자체 간 협의 구조 마련이 필수적이다.

아직 본격적인 남북교류협력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광역단체마다 직면하고 있는 고민은 같다. 지자체 간 과열 양상, 상호 중복사업 추진 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향후 전개될 남북교류가 단순한 인도적 지원 차원을 넘어 남북 상호 간 경제·물질적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지자체 간 상호 조정이 없다면 과열·중복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자체로서는 저성장 극복의 돌파구로 북한과의 교류협력 강화가 절실해 남북협력 주력사업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국 광역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협의기구나 거버넌스 등이 필요한 이유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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