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난초

  • 남정현
  • |
  • 입력 2019-03-11   |  발행일 2019-03-11 제31면   |  수정 2019-03-12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중략…/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가람 이병기 선생의 ‘난초’라는 시조의 일부분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시조로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받아 사느니라’는 선비의 지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을 즐겨 외웠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난초 가운데 한국춘란이 제철이다. 고장마다 춘란전이 열려 며칠전 지인이 출품한 춘란전에 들러 은은한 자태와 그윽한 향에 눈과 코가 호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한국춘란은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봄을 알린다는 뜻의 보춘화(報春花)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가격도 잎이나 꽃의 생김새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지만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는 취미가 없는 내게는 대개가 비슷비슷하게 보일 따름이다. 춘란전에서 친구의 초청으로 온 듯한 사람이 “그렇게 자랑을 해도 난(蘭) 한 포기 선물하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지인은 “난은 절대 선물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유인즉 “한 촉에 몇 천만원을 하는 난도 선물로 받으면 가치를 모르고 그냥 키우다 죽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난을 직접 사서 길러봐야 재배방법도 알고 제대로 키운다고 설명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난을 기르거나 예술을 하는 것은 대상을 더 많이 느끼고 더 풍부한 삶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장 난을 기르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난 전시회에서 동호인들의 즐거운 표정이나 뿌듯해 하는 태도를 보면 좋은 취미를 가졌구나 하는 부러움이 들기는 한다. 오는 16일부터 주말 이틀간 문경 온누리스포츠센터에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난 애호가들이 출품한 ‘한국난대전’이 열린다. 들리는 소문에는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도 나온다고 한다. 다른 꽃들도 봄소식을 알렸겠지만 그윽한 향과 자태를 뽐내는 난초들의 봄 향연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