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한전공과대학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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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9   |  발행일 2019-03-09 제23면   |  수정 2019-03-12

전남 나주에 한전공과대학(KEPCO Tech·켑코텍)이 들어선다. 전남 지역에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한전은 2022년 개교를 목표로 나주시 빛가람동 부영CC 일원 120만㎡ 에 대학과 연구소 등을 지을 계획이다.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600명 등 1천명 규모로, 등록금과 기숙사비는 무료다. 총장은 10억원 이상, 교수는 다른 과학기술 특성화대 교수 연봉의 3배가 넘는 4억원 이상의 연봉을 지급한다. 가히 파격적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대학이 될 듯도 하다.

문제는 대학 설립 주체와 돈이다. 설립 주체는 한때 잘 나가던 한국전력이다. 한전공대 설립 비용은 토지 매입비를 빼고도 5천억~7천억원이 소요된다. 운영비도 매년 500억원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한마디로 ‘돈 먹는 하마’다. 한전은 2017년까지만 해도 연간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초우량 공기업이었다. 이 정도 영업이익을 지속적으로 낸다면 한전공대 설립비용과 운영비를 충당하는 데 큰 부담이 없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한전의 주머니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지난해는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됐다. 한전이 작성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는 영업적자가 2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누적 적자도 114조원이 넘는다. 이런 와중에 한전이 당장 수천억원이 들고, 매년 수백억원의 운영비가 소요되는 한전공대를 설립하겠다고 하니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국내 대학은 과잉 상태다. 저출산으로 학령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전공대가 개교할 2022학년도 대학 신입생 수는 41만900여명으로 지난해 신입생보다 8만여명이나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교육부는 2022년까지 사립대 38곳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전공대와 유사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이미 5곳(카이스트, 포스텍, 디지스트, 유니스트, 지스트)이나 있다. 정부는 예산 비효율과 연구 중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텍을 제외한 4개 과학기술대학을 통합운영하는 ‘공동사무국’을 만드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대로 한전공대가 설립되면 머지않아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크다. 한전이 지금처럼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에너지 전문 인력 육성이 대학 설립 목적이라면 차라리 기존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쪽으로 재정을 더 투자하는 것이 낫다. 지금이라도 한전공대 설립은 재고돼야 한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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