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집토끼도 못 되는 TK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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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8   |  발행일 2019-03-08 제23면   |  수정 2019-03-08
[조정래 칼럼] 집토끼도 못 되는 TK
조정래 논설실장

‘한국당 너마저….’ 한국당마저 대구경북을 따돌린다는 TK 패싱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문재인정권 당·정·청의 대구경북 홀대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예견돼 왔다. 보수의 종가 TK로서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실제 지난 2·27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수도권 주자들이 TK 주자들을 배제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른바 이들의 ‘은따’(은근히 따돌림)는 선거전에서 차용된 일시적이고 집안용 전략·전술 차원이 아니라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정황과 소지가 다분하니 문제다.

두말 할 필요 없이 한국당 수도권 일부 의원들의 차별화 전략, 소위 ‘TK 갈라치기’는 어느 모로 보든 배은망덕의 소치다. 각자도생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유분수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히면 공멸이 기다릴 뿐이다. 한국당 황교안호를 통해 살아난 수도권 ‘친박’계가 TK를 희생양으로 ‘폐족’ 처리하고 싶기도 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래서 전국의 보수가 살아나고 결집한다면 못 쓸 카드도 아니다. 하지만 속셈이 뻔히 읽히고 비겁하기까지 한 편가르기는 통하기는커녕 부메랑이나 맞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TK 왕따를 통한 친박의 탈각 시도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한국당을 새로 출범시킨 황교안 대표가 신(新) 적폐와 강경 투쟁을 해나가겠다는 출사표보다 우선적으로 완수해야 할 과제가 바로 집안 단속과 전열 정비가 아니겠는가. 강경 일변도는 부러지기 쉽고, 또 세간의 우려를 사고 있는 바처럼 실패를 맛본 홍준표 전 대표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도 농후하다. 황 대표의 면전과 태세에 어리는 기시감이 기우로 끝나려면 ‘친박’과 탄핵에 대한 내부 입장 정리부터 확실하게 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 한국당에서 차지하는 TK의 위상은 어떠한가. 당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 제기이기도 한 이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전당대회 이후 당직 인선에 이전과 다를 바 없이 TK는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제 밥그릇을 못 찾아먹는 TK 정치인들의 무능이 소외를 자초한 최대 원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물이 없다 해도, 개인기를 인정받은 듯한 추경호 의원을 제외하면 지역 안배는 ‘알짜’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명예직’ 제수(除授)로 갈음했다. 이쯤되면 한국당 전체 책임당원 30%에 육박하는 ‘지분’을 지닌 보수의 ‘종가’라는 감투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한국당 TK의 몰락이다. TK의 자멸은 보수 본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이고,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시나브로 진행돼 온 위상의 추락이 더해졌다.

TK가 보수의 아성, 보수의 심장에서 졸지에 보수의 변방, 보수의 고도(孤島)로 밀려났다. 한국당의 TK 지우기는 묻지마 지지를 해 온 지역의 내생·내발적 원죄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TK를 바라보는 외부의 이중적 시각과 잣대에 기인한다. 표가 필요하면 보수의 본가로 추앙받다가 또 다른 표가 필요하면 ‘동메달’ ‘꼴통 보수’ 등으로 폄훼되고 가치절하되기 일쑤다. 찬밥 신세 한탄을 넘어 TK 보수의 정신과 가치 바로세우기가 시급하다.

무시당하고 홀대받지 않으려면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물에 잡힌 고기이거나 언제든 살렸다가 팽시킬 수 있는 집토끼, 아니 그보다 못한 처지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TK 정치권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자생력과 경쟁력 확보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한국당의 TK 배제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뻘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 TK의 원초적 본능인 야성 회복이 관건이고, 그동안 만연되고 팽배해 온 온실 속의 화초 근성과 결별이 급선무다.

‘중앙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살아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새벽에 도착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이 문자 메시지는 집권여당의 ‘갈라치기’와 한국당의 ‘따돌림’ 사이에 낀 안팎곱사등이 TK의 현실 진단과 처방전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TK 정치권이 홀로서기 대장정에 올라야 할 시기, TK 정치리더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권력의 그늘에 안주하길 거부하며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리더의 자격과 품격을 잃게 된다. 무주공산 TK 리더 자리는 공석이다.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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