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세대와 지역 갈라치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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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1   |  발행일 2019-03-01 제23면   |  수정 2019-03-01
[조정래 칼럼] 세대와 지역 갈라치기

“이분들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렇게 ‘부실한 교육 탓’으로 돌리면서 일파만파 야단법석의 담론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른바 ‘20대 청년 비하’ 발언은 세간의 이목을 통으로 집중시켰고, 홍영표 대표는 사과를 넘어 ‘사죄’의 뜻까지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발언 당사자인 홍익표 수석 대변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을 하고 나섰다. 공당의 핵심 당직자들 간에 벌인, 자중지란처럼 비치는 이 같은 일련의 사건과 사태는 우연한 설화(舌禍)에 의한 해프닝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치밀하게 짜였거나 무의식의 의식화에 의해 터져나온 이벤트나 각본으로 읽히기도 한다.

정치적 음모론이 제기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진보에 의한 세대 간 ‘갈라치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까닭이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동영 의원은 “60~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 집에서 쉬셔도 괜찮다”고 했다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2011년 무소속 박원순 시장 후보 멘토단에서 활동활 당시(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절)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부모(어머니)에게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하는 트위터 이용자에게 ‘효자’라고 치켜세웠다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로부터 “학생 가르칠 생각은 않고…패륜적인 발언이나 옹호하는 분이 지성이라니 ‘쯧쯧’”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정동영 발언보다 더 심하다는 비난도 가세했다.

20대 청년의 보수화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진영논리의 틀로 규정되기 어렵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88만원 세대들에게 정치적 편가름과 흑백논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회의 상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양극화로 인해 구조화된 불평등, 미래의 불확실성이 청년들의 인식을 온통 지배하고 있을 터인데….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모든 희망을 유예한 ‘N포세대’란 말이 왜 나왔겠나. 냉정하게 보면 지금 20대는 일자리와 일을 놓고 베이비 부머 아버지 세대와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야만 하는 실업자 양산 세대다. 승자독식의 고도·천민자본주의의 희생양일지언정 정치과잉의 ‘꼰대식 사고’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신인류이기도 하다.

20대 청년에 대한 무지와 무식은 세대교체에 의해 해소돼야 한다. 정동영의 언사를 그대로 패러디하면 설훈 의원처럼 60대 후반에 다다른 이들은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지금까지만 해도 많이 해먹었으니 20대 청년들에게 미련없이 자리를 물려주라는 말이다. 물론 유치하지만 나름 치밀한 집권 여당은 안성맞춤의 조치를 취할 게다. ‘CEO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아세안 국가를 가보면 ‘해피 조선’을 느낄 것”이라는 생뚱맞고 ‘조폭 CEO’적인 망언을 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다음날 바로 전격 교체했듯.

대책 없는 갈라치기도 등장했다.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지역 사이, 청와대와 민주당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할 테지만 정황 증거는 넘쳐나고 결과는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TK가 국책사업과 숙원사업 등에서 소외되고 홀대를 당한다는, 소위 ‘패싱론’이 지역 갈라치기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영남권의 민심 이탈, 특히 TK보다 PK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한국당에 뒤집힐 위기에 봉착하자 당·정·청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PK에 선택과 집중을 넘어 올인하는 사이 TK가 상대적으로 물을 먹게 됐다는 얘기고 단순히 볼멘소리만도 아니다. 경남 창원의 스마트 산단 선정과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원전해체연구소의 부산·울산 접경지역 내정 등 TK 부재증명은 많다.

20대·영남·자영업자 이른바 ‘이영자’의 지지율 이탈로 민주당이 특단의 대책 마련을 하느라 촛불과 민주화의 기수로 ‘청년정신’을 강조하고 PK를 부양하는데…. TK는? 정부 여당은 이미 세대·지역 갈라치기 프레임에 갇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생각나는 이치를 민주당이 헤아릴수 있을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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