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1>] “개성공단서 4년간 대북협상 전담…공단내 모든 기업현장 직접다니며 상황 점검”

  • 박종문
  • |
  • 입력 2019-02-26   |  발행일 2019-02-26 제8면   |  수정 2019-03-20
20190226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사진>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북한학자다. 참여정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을 거쳤으며, 2008~2011년 4년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으로 북한주민과 동고동락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북한(개성)에 장기체류한 인물로 북한주민의 일상, 의식, 성향 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2017년 12월부터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부임해 다시 개성공단과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대북교류를 위해 애쓰고 있다. 김진향 이사장은 대구시, 경북도, 지역기업, 학계가 북한과의 경협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향 이사장은 북한 사람을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는 학자이자 관료라 생각된다. 이번 인터뷰에서 남북 간 정치·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일상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면 한다. 언제부터 북한과 인연을 맺게 됐나.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 평양·개성·제주도 등에서 남북이 빈번하게 장관(당시 정동영 장관)급 회담을 가졌는데 정식 회담 멤버는 아니지만 그 현장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난 게 첫 인연이다. 그때가 2004년이다. 그리고 2008년부터 4년간 개성공단에 체류하면서 대북협상을 전담하게 됐다. 북한 사람들과 가장 많이 접촉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맡아 북측과 실무협상을 담당했다. 북한체제를 연구했던 학자로서 전공영역인 북측 체제와 사회를 제대로 연구하고 들여다보기 위해 개성공단 근무를 자원했다. 북측 주민과 부대끼면서 생활을 해봐야 그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 윤리관, 도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 하나 사이로 북측 직원들과 함께 지내며 묻고 따지고 논쟁하며 많은 걸 배웠다. 학자로서 알고 있는 북한과 현장에서 체험한 북한의 차이를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은 어떤 자리인가.

“개성공단에서 발생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대북협상을 전담했다. 하루에도 3~4건 협상했다. 관리위원회는 남북 직원이 같이 근무한다. 기업지원부장 소관 부서에도 북측 직원이 있다. 일상적으로 북측 당국자와 협상을 하고 또 우리 부서에 있는 북측 직원과 같이 근무했다. 친하게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서로 생일 축하해주고 떡도 나눠먹고 그러면서 친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배워나갔다. 당시 기업지원부장은 유일하게 개성공단 내 모든 기업현장을 직접 다니며 상황점검을 할 수 있었다. 거기서 4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정든 사람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국내에서 북한학자가 북측에 장기체류하면서 북측을 들여다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개성공단에 오래 있었다. 진짜 북한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리석은 질문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북한사람 만나 보니 실제 어떤가. 우리하고 많이 다른가.

“어리석은 질문 아니다. 다 똑같은 상황이다. 북한문제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을 ‘북맹(北盲)’이라고 한다. 북한을 모르는 북맹말이다. 분단이라는 이 체제가, 체제로서 구조화한 분단이 국민을 북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분단체제는 전쟁을 못 끝내고 있는 체제다. 전쟁을 못 끝내고 있는 체제적·제도적인 근거가 휴전협정이다. 전쟁을 쉬고 있는 협정이 휴전협정이기 때문에 사실은 광의의 의미에서 남북은 전쟁적 상황이다. 전쟁적 상황에서 상대방은 적이다. 적이면 됐지, 굳이 (국민이) 상대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 이상 더 파고들어 공부하려고 하면 위험해진다. 북한을 아는 게 금기의 영역, 터부의 영역이었다. 그 세월이 벌써 70년이다. 구조적 분단체제가 구조적 북맹을 양산한 것이다. 북맹일 수밖에 없다. 결론은 누구도 북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70년 분단체제 구조와 문화가 돼버렸기 때문에 다 똑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에겐 미지의 영역 아닌가. 처음에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좀 파격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 볼까. 분단체제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된 이미지에 대한 질문이다.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노리는 북한은 과연 존재할까’. 이는 간단치 않은 질문이 될 수 있다. 분단체제 속에서는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노리는 북한’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북측 사람을 만나고 뭔가 하려면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둬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