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김광석 길 추모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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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2   |  발행일 2019-02-22 제36면   |  수정 2019-02-22
길 위에, 가슴 속에서 빛으로 물드는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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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 야외콘서트홀에서 열린 김광석 추모 콘서트(위).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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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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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스산한 광경

그건 감미로운 탱고였다. 야자수 나무 아래 구릿빛 얼굴을 한 여인의 관능 같은. 저 햇빛 쏟아지는 아드리아 해의 부서지는 파도 같은. 탱고는 흥분 그 자체였다. 그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음악이 귓전에 걸릴 때마다 나는 공연히 쾡한 헛기침을 컹컹 토해야 했다. 이곳 방천시장과 김광석다시그리기 길의 초입에서 나는 서성거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제 이곳에 멋모르고 왔다가 내일이 김광석의 추모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일 다시 찾기로 하고 건성으로 김광석다시그리기 길을 둘러 봤다.

겨울 오전의 햇빛은 스산하고 황량했다. 도무지 사람의 마음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비록 메마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남아있는 맨살 비비는 라포르(rapport)의 경청과 공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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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동상

마치 줄 끊어진 기타처럼 망가뜨린 삶
서른셋에 꿈속으로 떠난 영원한 가객
벽화길 따라 노래 가사 음미하며 걸음
기타와 노래로 몸부림 친 생의 순간
음유시가 되고 상형문자가 되어 고착
그의 동상앞에 서서 기억한 노래·연주
시간을 정지하게 만드는 묘약·마술
이 거리에 바치는 슬픈 목소리와 웃음


현대 문명병의 소외와 냉정, 견딜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내면에서 자꾸 올라와 감정을 이리저리 마구 흐트려 놓았다. 그건 무서운 형벌이다. 이제 우리가 기대고 살아왔던 믿음과 신앙은 무너져 내리고, 그 믿음과 신앙에서 무성하게 피었던 사랑은 겨울 오후의 햇살처럼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나마 인류의 역사에 생명을 공급하고, 빛의 에너지를 방광하던 사랑, 자비(慈悲), 인(仁) 등 구원의 언어들은 폐지처럼 고물상으로 실려 가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소독약 같은 과학의 가공할 위력이 차지하고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인간의 가치는 더 상품화되고 물질화되었다. 우리에게 대화가 필요하고 의사소통이 절실할수록 현대사회는 더 분열하고 나 자신의 쾌락에 몰두했다. 이제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신의 자리에 마약이, 게임이, 성적 쾌락이, 술의 중독이 필요하게 되고 신의 음성을 전달한다는 종교마저 최면과 환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새로운 면죄부 판매장이 되었다. 그러나 엄청나게 발달한 과학과 물질문화가 새로운 신이 되어 신종 인간을 창조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현대병의 상처가 투사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오늘 그의 추모식도 볼 겸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재차 방문하면서 먼저 그 탱고를 들어야 그의 추모식을 가슴에 쓸어 담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 화면에 나오는 자막과 한 쌍의 남녀가 추는 탱고는 적어도 이 순간에서는 나의 감정을 증류하는 전환의 힘이 있었다. ‘사랑은 값이 없는 것… 불도마뱀처럼 사랑은 불가사의 한 것… 그리고 불새처럼 재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망각의 물이 아니고서는… 너는 사랑을 팔 수 없어, 사랑은 그냥 주는 것, 육체가 눈을 뜨면 너는 걱정을 시작하지, 그러나 마음이 눈을 뜨면 너는 꿈을 꾸지… 사랑 그것은 이유도 없고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왜냐하면 이 야릇한 떨림은 …’ 탱고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방천 휴게소 ‘낮 술 환영’. 저렇게 낮술을 선전하려면 이태수의 시 ‘낮술’이라도 좀 걸어놓지, 그럼 훨씬 더 낮술에서 꿈속으로 걸어 갈 건데. ‘로라방앗간 떡볶이는 로라에서’를 지난다. 이 역시 지나가리라. 길은 일직선으로 단순하나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로 구성됐다.

솔로 통기타 가수로 인기를 누린 김광석은 애석하게도 불과 33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떤 힘이 그를 그렇게 줄 끊어진 기타처럼 망가뜨려놓았을까. 그가 애창하던 ‘서른 즈음에’가 벽에 적혀있다. 그 노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가마귀 나는 밀밭’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가사는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살아생전 ‘노래하는 철학자’란 별명답게 그가 남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면, 멍한 눈동자에 우주를 주워 담는 바보스러운 성자의 해학 같은 미해결의 쾌감이 있다. 그의 노래를 형상화한 조잡한 벽화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퍼즐이고 재활이다. ‘영원한 가객, 지금 이 거리에서 DGB금융그룹도 그를 기억하며 흐린 추억의 상념을 이야기 한다’도 적혀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벽화를 따라 간다. 김광석의 음악세계가 낳은 가사와 악보를 의식에 마구 퍼 담으며 그렇게 걸어간다.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노부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생의 황혼에서 흔적은 뒷모습이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그때 그 눈물은 인생 황혼의 시(詩)이고, 누구라도 갈무리하는 비밀창고의 블루스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썰렁한 슬라브 벽에 주옥 같은 글들이 나열되어 있다. 김광석 그가 건너지 못한 세계, 그가 기타와 노래로 건너려고 몸부림친 생의 순간순간들이 음유시가 되고 상형문자가 되어 고착되어 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먼지가 되어’ ‘사랑했지만’. 솔로 통기타에 혼신의 정열과 영혼을 담아 부른 노래들이다. 그러나 그 노래들은 번번이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쳐 돌아와서 허무하고 무의미한 메아리로 사라지곤 했다. 대체 무엇일까. 영혼을 다 태울 것 같은 노래들이 불꽃놀이를 하며 피어올라 대중을 환희케 해도 왜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존재의 허망감은 더 깊어만 가는 걸까. 김광석은 스스로 자기를 부정했다. 그가 선택한 자기 부정은 영원한 긍정으로 태어나는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의 노래는 인생의 길목 우리가 지나는 문 옆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라디오 DJ 박학기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 동상 앞에 선다. 나는 김광석의 기타 반주와 노래를 들은 적 있다. 그의 손놀림은 너무 현란하고 기교가 넘쳐 도리어 비애로웠다. 공간을 울리는 곡, 그 가사는 우리의 시간을 정지하게 하는 묘약이고 마술이었다. 그런 화음의 환상에서 죽음은 음악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음악과 죽음은 꿈이고, 꿈속의 꿈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버리고 스스로 만든 가공의 세계에서 자신을 속박하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 그것을 알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면 자기를 스스로 묶고 견딜 수 없는 박탈감에 다시 허우적거리게 된다.

우리는 꿈을 꿀 때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 꿈을 깨고 나서 그것이 꿈인 줄 안다. 음악도 인생도 하나의 꿈이다. 너와 나도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사실도 하나의 꿈이다. 김광석은 꿈속에서 통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죽음이라는 새로운 꿈속으로 갔다.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하는 현장 야외 콘서트 홀로 간다. 제법 넓은 홀인데도 추모객이 그득하다. 김광석이 부른 ‘서른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른다. 얼핏 듣기에도 상당한 수준의 가수다. 그러나 이 가수의 노래에는 김광석의 죽음이 알려주는 꿈의 신호가 없다. 차례로 시낭송, 퍼포먼스, 다시 김광석의 노래로 이어졌지만 김광석은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추모콘서트를 마치자 모두 돌아간다. 그러나 김광석의 노래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 가슴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반짝인다.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디를 길 위의 빛으로 옮겨 놓았다. 그토록 슬픈 목소리와 너무나도 환한 웃음을 지녔던 그에게 이 거리를 바친다. 이후 나는 또 김광석 길을 헤매야 하리라. 김광석처럼 뭔가 찾아 헤매다가 꿈을 꾸고, 노래를 부르다가 죽음이라는 꿈속으로 떠나는 이들을 찾아서 떠날 것이다.

글= 김찬일 시인 대구 힐링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방천시장 및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입구 - 예술상점 - 추억의 문방구 - 야외 콘서트 홀 - 바하의 선율

▶문의: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 (053)423-2017

▶내비 주소 : 대구 중구 동덕로 8길 14-3

▶주위 볼거리 : 서문시장, 근대화골목, 안지랑곱창골목, 앞산전망대, 수성못, 국채보상기념공원, 이월드 두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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