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역살리기를 고민하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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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1   |  발행일 2019-02-21 제30면   |  수정 2019-02-21
[취재수첩] 지역살리기를 고민하다
노인호기자<경제부>

지난달 22일 취재차 찾은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광고문구가 ‘Coffee. Ethiopia’s gift to the world’였다. 출발 전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예가체프 커피 원두(이하 예가체프)’를 사오라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에티오피아는 커피’였다.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예가체프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출발하기 전날 저녁까지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예가체프는 없었다. 현지 가이드 3명은 아디스아바바에서는 구하기 힘들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예가체프는 아디스아바바에서 440㎞ 떨어진, 케냐 국경과 맞닿은 곳에 있었다.

대안으로 가이드가 추천한 ‘토모카(TO.MO.CA.)’ 커피 원두를 샀다. 토모카를 사기 위해 여러 곳의 가게를 돌다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아디스아바바 내에 있는 토모카 커피 체인점은 물론 대형마트, 작은 구멍가게에서 파는 원두 가격이 모두 같았다. 1953년 한 이탈리아인이 아디스아바바에서 처음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토모카 1호점도 같은 가격이다.

아디스아바바에는 왜 예가체프가 없고, 토모카는 왜 어디를 가나 가격이 같을까. 현지 가이드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예가체프는 그 지역까지 가야만 살 수 있고, 이 지역에서는 어디를 가나 같은 가격이니 아무 곳에서나 토모카를 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예가체프를 구할 수 없는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모르지만, 이를 지역 살리기와 연결해보면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다.

대구 경북에서 먼저 떠오르는 특산물이나 음식을 생각해보자. 대구의 동인동찜갈비, 경주의 황남빵, 안동의 안동소주, 상주의 곶감 등 먹거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해당 지역을 말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음식을 먹기 위해서 해당 지역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있을까.

당장 동대구역 상가에도 황남빵이 있고, 유명한 백화점에만 가면 팔도의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다. 그러니 굳이 현지까지 가지 않을 것이고, 간다고 해도 굳이 찾을 이유가 없어진 상황이다.

보성 녹차, 순창 고추장, 의성 마늘 등과 같은 지리적표시제 등록 상품에 한해 해당 지역 이외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률을 만든다면 어떨까. 초기에는 불편해진 소비자들로 매출이 줄겠지만, 시간이 지나 이것이 당연해진다면 특산물로 해당 지역에서 관광객을 끌어오고, 지방소멸의 걱정도 덜지 않을까.

대구에 온 김에 찜갈비를 먹는 것이 아니라 찜갈비를 먹기 위해 대구를 찾고, 과메기를 먹기 위해 포항을 찾는 상황이 되면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돈이 더 많아지고, 결국 지역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을 살리게 될 것이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 줄 몰랐지만 이미 왔고, 맑은 공기까지 파는 시대가 됐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자율주행차도 이미 돌아다니고 있다. 특산물 타 지역 판매 금지를 통한 지역 살리기가 이보다 실현되기 힘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노인호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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