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손자의 꿈 ‘부자’

  • 서홍명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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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0   |  발행일 2019-02-20 제13면   |  수정 2019-02-20
[시민기자 세상보기] 손자의 꿈 ‘부자’

설 명절이 따뜻한 날씨 속에 무탈하게 지나갔지만, 명절에 아들딸 내외와 손자와 나눈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설날 아침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고 가족 모두 둘러앉아 건강, 어려운 경기 등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초등 4학년 손자에게 “나중에 어른이 돼 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질문했다. 몇 해 전부터 한 번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저했던 질문이다. 기대 밖의 대답을 하면 어쩌나, 행여 어린 손자에게 부담을 주는 걸까. 그냥 함구하다 이번에는 마음을 내 물어본 것이다.

“저는 커서 축구선수가 될 거예요.”

내 자식들이 어린 시절 꿈꾼 대통령, 법관, 의사, 교사, 과학자 등 그런 유(類)의 대답일 줄 짐작했지만, 약간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꿈이고 희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축구 열심히 해서 박지성, 손흥민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거라”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며느리가 “아버님!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장래희망 설문에 1위가 부동산 임대업(부자), 2위가 운동선수(부자), 3위가 유튜버(인터넷방송진행자/부자)래요”라고 힌트를 줬다. “오로지 부자가 장래희망 1순위”라는 대답에, 손자의 꿈도 ‘부자’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전보다 더 깊은 아쉬움이 들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26)의 최근 연봉 계약 수준이 대략 150억원이라고 했다. 주급 14만파운드, 한화 기준 2억원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첼시나 뮌헨 등 이적설에 오르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프리미어리그 톱 5위 안에 드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돈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아이들의 꿈마저도 작금의 현실을 반영해 주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요즘 온라인에서는 건물주 대신 ‘갓물주’라는 표현이 등장, 심심찮게 사용된다. 초등학생이라면 아직은 부모나 주변의 어른,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초등학생들이 말하는 장래희망, 꿈이 이구동성 ‘부자’라면 어른들의 세계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4~6학년 어린이 40%가 연기자, 가수, 운동선수와 디자이너 등 예술 스포츠 전문가 및 관련직을 장래희망으로 꼽았다. 고용불안정과 경기침체라는 현실의 여파와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근래엔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해지는 추세를 눈여겨 볼 일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이색직업이라 해 막연하게 꿈만 꾸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보도 찾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습을 하는 등 적극적인 면도 주목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단순하게 아이들의 의견이나 생각이 다르다 해서 놀라거나 혀를 끌끌 차고 있다면 속된 말로 ‘꼰대’가 아닐까. 결국 어른들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곳에 비친 자신의 민낯을 쳐다보자. 부끄럽지 않은 어른, 손자와 잘 소통할 수 있는 괜찮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게 새해 소망이다.

서홍명 시민기자 abc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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