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일로 가꾼 삶 “죽는 날까지 베풀 것”…고향 경주서 ‘인생 2막’ 김기환씨

  • 문순덕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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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0   |  발행일 2019-02-20 제13면   |  수정 2019-02-20
어릴적 눈 다쳐 30년간 안대 사용
외모가 취업 막자 힘든 나날 보내
머슴살이·짐꾼 등 가리지 않고 일
성실히 한두푼 모아 자식 키운 뒤
남 도울 수 있는 일은 발벗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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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씨가 경주YMCA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보자기 제기차기 전통놀이를 하고 있다. <김기환씨 제공>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 어찌 역경을 이겨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릴 때 남의 집 머슴살이에서 짐꾼, 배달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야만 했던 김기환씨(72·경주시 산내면 신원2리)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안경 너머에는 눈물이 어렸다. 그는 직접 지은 농산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삶을 즐기면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고생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시골 5일장에서 사 온 상어고기를 다듬을 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반가움에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다가 상어 껍질을 벗기던 무딘 칼이 껍질을 벗어나 그의 오른쪽 눈에 상처를 남겼다. 너무 가난하게 살다보니 병원에 가지 못하고 그대로 낫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을 싸서 갈 형편이 못돼 점심시간이 되면 우물물만 마시고 수업시간 종소리를 듣고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중학교로 진학했지만,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로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성실하게 일을 해 다른 일꾼보다 품삯을 더 받았다고 했다. 꾀를 부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무관심하게 뒀던 눈에 이상이 생겨 19세 때 대구 K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사물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안대를 착용하며 살아야 했다. 30년 동안 안대를 한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동네 친구가 안경을 사줘 안대를 벗었다고 했다.

그는 남들이 잠잘 때 새벽에 일어나 논을 갈고 풀 베는 일을 하고 나서야 아침밥을 먹었다. 성실하게 일을 하다 보니 동네 형들이 부산에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해 무작정 부산에 갔지만, 안대를 한 외모를 보고는 취업을 하지 못했다. 자신을 스스로 책망한 끝에 세상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부산에서 자전거로 쌀, 막걸리 배달, 잔심부름으로 입에 풀칠하다가 24세에 다시 고향 경주 산내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산판일, 짐꾼으로 살다가 26세에 공장 일을 하던 배우자를 만나 서로를 격려하고 살아보자며 결혼을 했다. 셋방살이 하는 10여년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의 삶을 위해 절약하여 조금씩 땅을 샀다.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생활을 하다 보니 가정형편이 나아졌다고 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열심히 노력해 저축하고 내 집과 땅을 가지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러다 보니 어릴적 결심한 게 생각났다. 힘들 때 나처럼 어려운 이웃에게 한 자루의 촛불이 되고자 했던 결심이 바로 그것.

형편이 좋아지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물질이든 육체적 노동이든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봉사하고 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그의 신념은 노년 생활에 활력소가 됐다. 한쪽 눈을 잃어서 5급 장애인으로 살면서 신원2리 반장 30년, 신원2리 이장 6년, 산내 신체장애인 산내 분회장 18년, <사>경주시 신체장애인 지부장 3년, 새마을 지도자, 산내농협 영농회장, 경주시 신체장애인 후원회 명예회장, <사>한국자유총연맹 산내 회장 등 많은 활동을 했다.

현재 한궁강사로 산내면 노인들에게 주 1회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예절 강사로 봉사를 하고 있다. 이장을 하면서 매골경로당을 건립해 동민을 위해 점심 제공을 했는데 지금도 부인 이옥식씨(64)는 오전 11시만 되면 점심을 준비해 식사 제공을 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마음이 부자라서 무엇이라도 베풀고 싶다는 그는 “이 나이에 뭐 하겠나. 죽는 날까지 봉사하면서 보람 있게 살다가 가야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문순덕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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