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박근혜의 길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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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9   |  발행일 2019-02-19 제30면   |  수정 2019-02-19
믿기 쉽지않은 옥중메시지
정치적 종언을 고하는 계기
朴에겐 결국 부메랑이 될것
죽으려하면 살것 명언 새겨
우파재건 거름될 각오 필요
[화요진단] 박근혜의 길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오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황교안·오세훈 등 당대표 출마자들을 흠집낸 ‘옥중 메시지’는 믿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지켜온 대한민국 ‘보수의 아이콘’자리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인지, 아니면 ‘박(朴) 남자들의 정치’를 돕기 위함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리인의 전언’은 일단 중반으로 접어든 자유한국당 당권 레이스에서 ‘박근혜’를 다시 화두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지난 20여년간의 박근혜 정치사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악조건 속에 있는 숱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 덕에 많은 당내 선거에서도 ‘박심(朴心)이 어디있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바로미터로 간주되었다.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이‘현장’에서 잊히는 것은 ‘무덤’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박 전대통령은 이번에 당권 주자들을 흔드는 것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황교안 후보를 겨냥한 감방 내의 책상 의자, 수인(囚人) 번호를 둘러싼 힐난 등 불만과 불평 표출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그를 한동안 휘청거리게 했다. 또 전당대회 중 각종 토론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및 박 전 대통령 탄핵·구속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를 중요한 쟁점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옥중 메시지는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실질적으로 ‘박근혜 정치의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또 ‘박 남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저지른 자가발전이라면 역효과만 얻을 공산이 크다. 당장 수치적 증거로 ‘옥중메시지’로 친박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는 황 전 총리의 대세론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물론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후보간 경쟁은 첨예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각축전의 담론은 위기의 우파를 구할 적임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공방이 될 것이다. 박근혜 옥중메시지는 찻잔속 태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세상과 담을 쌓고 신문도, 방송도 안 보고 팬레터 등만 본다는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에는 나라걱정도, 우파의 재건도 없고, 오로지 개인의 신세한탄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옥중메시지’가 부메랑으로 박 전 대통령 스스로를 찌르는 비수가 되어 날아가 박히는 것을 보면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던 정치인 박근혜는 어디갔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6년 11월 노무현 참여정부 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전 대표였던 그는 한 초청 강연에서 “제 한 몸 던져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각오로 정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야당 대표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선친의 꿈을 이루는 게 제 생의 전부”라며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리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된 그는 캐치프레이즈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내걸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심 없이 국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런 각오로 국정을 임했던 그가 온갖 음모로 탄핵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누가 뭐래도 박근혜는 정직할 것’이라고 믿었던 국민에게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숨겨두고 측근은 없다고 거짓을 이야기했던 점 하나만이라도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또 최고 정치 지도자로 극한의 위기순간에 정치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스스로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해 “내탓이요” 하며 먼저 가슴을 쳐야 할 일이다.

예전에 우리가 알던 박근혜라면 우파를 미래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과거 회귀적인 편가르기를 버리고, 자신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우파 재건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겠다고 했어야 한다.‘죽으려 하면 살 것’이라고 한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박 전 대통령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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