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단절된 산속 암자…비구니스님들의 동안거

  • 입력 2019-02-18 21:43  |  수정 2019-02-18 21:43  |  발행일 2019-02-18 제1면
백흥암 영운 스님 "배려하면 싸움 없어…그것이 불국토"

 기와로 쌓은 흙벽에 둘러싸인 암자 입구에는 '수행도량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선방에서 좌선하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 열기는 매서운 추위도 녹이는 듯했다.


 경북 영천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은해사의 산 내 암자인 백흥암은 1년 중 부처님오신날만 일반에 공개하는 비구니 수행 도량이다.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찾은 백흥암 내 심검당(尋劍堂)에는 13명의 비구니스님이 막바지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심검당은 번뇌를 단번에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채색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암자, 굳게 문을 닫고 수행하는 스님들이 어우러져 세상과 분리된 듯 맑은 기운이 흘렀다.


 이들은 지난 3개월간 매일 새벽 3시에 기상해 예불을 올리고 오전 7시 30분 입선(入禪)해 12시간씩 수행에 전념해왔다.


 백흥암이 있는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로, 809년 혜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원효·일연·설총 등 여러 고승을 배출했으며 근래에는 성철·향곡·운봉 스님 등이 거쳐 갔다.


 873년 완공된 것으로 알려진 백흥암에는 보물 제790호 극락전과 보물 제486호 극락전 수미단이 있다. 백흥암은 비구니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의 배경이기도 하다.


 백흥암 선원장 영운 스님은 "30여년 전에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온 천지가 조용한 가운데 촛불 두 개만 놓고 하루 13~14시간씩 정진했다"며 "이제 그때의 서슬 푸른 분위기는 아니지만 정진하는 스님들의 기운이 좋다"고 말했다.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일찍부터 문을 잠갔는데, 그래서 더 유명해진 것 같다"며 "안거에 들어갈 때 모두 어렵고 불편해도 화두를 챙겨 애써서 정진하자고 했는데, 앞으로도 각자 발원한 대로 수행을 계속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안거란 겨울과 여름 각각 3개월씩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영운 스님은 18세였던 1964년 현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9년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67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처음 동안거를 한 후 해인사, 석남사, 동화사, 백흥암 등에서 수행했다. 울산 석남사 주지를 역임하고 2004년부터 백흥암 선원장을맡고 있다.


 영운 스님은 "밥 한 발우(그릇)는 피 한 발우"라고 했다. 밥값을 갚아야 하고, 스스로 밥값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내가 번 돈을 내가 쓴다고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없다"며 "각자 수고로움이 있으니 각자가 모든 것을 아낄 때 복이 온다"고 말했다. 스님은 참아야 한다는 인욕(忍辱)과 배려를 강조했다.


 그는 "서로 조금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타협이 되는데 남을 밟고 올라서려 하면 타협이 안 된다"며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싸움은 없고, 그것이 불국토"라고 설명했다.


 영운 스님의 법명은 성철 스님이 지었다.


 영운 스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아마도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라고 주신 것 같다"며 "참 좋은 법명을 주셨는데 법명 값을 못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디 속박돼 살지는 않지만 정말 구름처럼 바람처럼은 못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리될 날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라며 "가르침을 주셨던 큰스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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